"선배님… 이빨 좀 주실 수 있으세요?"
젊은 학생들이 동네 치과의원을 찾아와 발치(拔齒)한 치아를 달라고 연방 굽실거린다. 환자의 몸에서 빼낸 치아를 함부로 반출해서는 안 되지만 학생들의 딱한 사정을 외면할 수 없는 치과의원 측은 치아를 학생들에게 건넨다. 이들은 치대·치의학전문대학원 본과 2~3학년 학생들이다. 왜 이 치대학생들은 폐기처분돼야 할 치아를 구하러 다니는 것일까.
치과대 본과 1~2학년 수업에선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공치아를 가지고 실습을 한다. 하지만 치료실습 수업이 시작되고 대학병원에서 교수들의 감독하에 직접 환자를 대면하게 되는 3학년 이후엔 실제 치아를 통한 실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치아의 외부는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조직이다. 그러나 치아 내부는 신경과 혈관으로 이뤄진 부드러운 조직인 치수(齒髓)로 구성돼 있다. 단단한 외부 표면이 뚫려 치수 부분까지 손상을 입는 충치 치료 등의 상황을 플라스틱 인공치아론 실습할 수 없다. 실제 치아와 강도 차이도 커 실전교육에 잘 맞지도 않는다.
실제 치아는 예비 치과의사 교육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현행법상 실제 치아를 이용한 교육은 불법이다. 발치를 한 치아는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모두 의료폐기물로 분류된다. 병원은 이를 수거해 폐기기관에 보내게 돼 있어 치과대학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실습용' 치아를 수집할 수 없다. 그래서 대다수의 치대생은 불법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실습에 사용할 치아를 직접 구하러 다녀야 한다.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K(27)씨는 "실습에 사용할 치아를 합법적으로 구할 수 없어 학생들은 치료실습 수업을 듣기 전에 치과의원을 돌면서 치아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했다. 동네 치과의원에서 학생들을 위해 치아를 내준다고 해도 구하기 어려운 치아도 있다. K씨는 "보통 치과 환자들이 흔히 치료를 받는 어금니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암 수술을 받거나 교통사고 수술 때나 뽑는 앞니를 구하는 것은 특히 어렵다"고 했다.
동네 치과의원에서 치아를 구하지 못한 학생들의 사정은 더욱 안타깝다. 치대생 L(24)씨는 "치아를 구하지 못한 학생 중에는 자신의 사랑니를 뽑아 오거나 어린 조카의 유치(乳齒)를 구해 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엔 해외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치아를 구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실제로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선 치아 50개에 400달러(약 45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매년 치대생들의 '애환'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치아를 교육용으로 전용할 수 없게 돼 있는 폐기물 규정 때문에 치대생들의 '범법행위'는 계속되고 있다. 치의전 재학생 S(26)씨는 "의대생들의 해부 실습을 위해 카데바(연구용 시체·cadaver) 교육을 인정해 주듯 교육 목적으로 실제 치아를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한치과의사협회 관계자는 "(치대생) 교육을 위해 실제 치아 사용을 제도화할 수 있도록 해당 부서와 협의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대 치대 손호현 교수는 "치아를 폐기물로 관리하는 것은 감염문제와 환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윤리문제 때문인데, 발치를 한 치과의사가 소독 과정을 거쳐 보관한다면 감염문제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고 발치를 할 때 환자에게 '교육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동의를 받도록 한다면 윤리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