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는 낯선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그 도시의 쇼핑백을 수집한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슈트케이스를 열면 쇼핑백 한 무더기가 쏟아진다. 그는 쇼핑백을 캔버스 위에 덕지덕지 붙이고, 그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쇼핑백을 낳은 도시의 인상을 그린다. 독일 미술가 티츠(Thitz·50) 이야기다.
"쇼핑백은 도시의 상징입니다. 쇼핑백 없는 도시는 없으니까. 평범한 도시의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쇼핑백과 함께 일상을 영위합니다. 쇼핑백은 상상력의 요체입니다. 사람들이 들고 있는 쇼핑백을 볼 때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과연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티츠 개인전이 내달 2일까지 서울 청담동 청담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서울·뉴욕·런던·파리·베를린·상하이·드레스덴·베니스 등 8개 도시를 표현한 '쇼핑백 그림' 17점이 나왔다. 작품 '100년 후 서울, 현재는 지금'(2012)은 가로 180㎝, 세로 140㎝짜리 캔버스에 서울에서 얻은 쇼핑백을 붙이고 그 위에 작가가 상상한 100년 후 서울의 모습을 그렸다. 쇼핑백 대부분이 아크릴 물감으로 뒤덮여 원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캔버스 끄트머리로 손잡이 몇 개만 삐져나와 있을 뿐이지만, 화면 위로 언뜻언뜻 백화점, 갤러리, 아트페어 로고 등이 비친다. 한강의 수면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진 가운데 높은 건물이 들어서고, 강 위엔 TV 모니터가 조합된 다리가 건설된 풍경. 티츠는 쇼핑백뿐 아니라 중국집 메뉴 스티커, 과자 봉지, 잡지 표지, 신문, 전시회 포스터 등도 콜라주해 '서울의 인상'을 만들었다. 그는 "100년 후엔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지금보다 높아질 거다. 그래서 건물 높이도 높아질 거고. 한강에 건설된 새 다리는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을 본뜬 것으로 만들어 봤다"고 했다.
2010년 KIAF(한국국제아트페어) 참석차 서울을 처음 방문했다는 티츠는 "굉장히 멀리 날아왔는데도 서울이라는 곳이 너무나도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간 방문했던 다른 대도시들과 아주 비슷한 느낌, 그리고 굉장히 모던한 도시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 밖에 서울의 밤거리, 뉴욕 센트럴 파크 등을 그린 작품도 출품했다.
티츠가 '쇼핑백'을 작업 재료로 사용한 것은 1985년부터. 당시 정치·사회·문화적 이슈 등을 그려넣은 쇼핑백을 각계각층 사람들과 주고받는 운동을 펼친 '대화' 프로젝트가 계기가 됐다. 이후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 시작, 지금까지 50여개 도시의 이미지를 '쇼핑백 그림'에 담았다. 27년간 작품에 사용한 쇼핑백만 해도 수천 장. 쇼핑백을 재활용해 작업한 덕에 그는 종종 '환경 보호 작가'로 여겨진다. 그러나 정작 그는 "내 작품은 딱히 환경보호와는 연관이 없다. 다만 전 세계 60억 인구 모두에게 친숙한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02)540-3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