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경의 2011~2012년작 ‘슬픔’.

유현경(27)은 '도발'로 각인된 작가다. 2009년 인사아트센터 개인전 '욕망의 소나타'에서, 그는 모텔 방을 배경으로 남자 누드를 그린 '일반인 남성 모델' 시리즈를 선보였다. 인터넷 공모를 통해 모집한 남자 모델과 단둘이 경남 밀양, 강원도 주문진 등으로 여행을 떠나 작업한 유현경은 40여 점의 연작을 통해 "'남성 화가와 여성 모델'이라는 고정관념을 뒤집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는 29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유현경 개인전 '거짓말을 하고 있어'는 그의 '선정성'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의외의 전시가 될 것 같다. 이번 전시 출품작 100여 점은 모두 초상화. 표현주의적인 붓질은 다소 거칠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고요하고 차분하다.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간 독일 동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유현경은 그곳에서 만난 작가와 마을 사람 등 여덟 명을 모델로 삼았다. 모델들에게 "한 달 이상 꾸준히 내 작업실을 방문해 달라"고 부탁한 유현경은 모델의 형태보다는 내면에 자리한 정서에 주목했다. 그는 일단 모델의 초상화를 그린 후 완성된 초상화에 물감을 덧칠해 얼굴을 지워버렸다.

"처음엔 모델에서 'A'라는 느낌을 받아 작업을 시작했지만, 막상 완성된 작품은 'B'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모델에 대해 느꼈던 애초의 감정이 '모두 거짓말이었다'라고 생각해 내가 끌어내려던 정서가 나올 때까지 그림을 지워버렸다."

'생각'(2011), '차분한 사람'(2011), '착한 사람'(2011)…. 이번 출품작 제목이 대개 인간의 성정(性情)이나 내적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인물의 표정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는 인물의 제스처나 옷의 빛깔로 표현된다. 가령 작품 '…'(2011)의 침묵과 고요함은 긴장감에 끊임없이 양손을 만지작거리는 모델의 제스처, 짙은 빛깔의 의복, 짙푸른색 배경 등으로 나타났다. 2008년 100명의 모델을 한 명당 1~2시간 새에 빠르게 그려내는 작업 '100인의 초상화'를 시도했던 유현경은 "이번엔 모델 한 명을 오랫동안 붙잡고 끝까지 파악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단기간에 빠른 변화를 보여준 이 젊은 작가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관객의 몫이다. (02)720-15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