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회계사·변리사·경찰·기자…. 최근 임명된 '국내 로스쿨(law school·키워드 참조) 출신 제1호 검사' 42명 중엔 독특한 전직(前職)의 소유자가 꽤 있다. 여기엔 '의사 출신' 이선미(27) 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청 검사와 '연구원 출신' 김상천(35)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검사도 포함된다. 임관식이 있던 지난 2일 오후, 두 사람을 대검찰청(서울 서초구 서초3동) 청사에서 만났다. 이들이 안정된 직장 대신 낯선 도전을 택한 이유는 뭘까.

◇잘나가던 병원장·연구원, 사표 던지기까지

이선미 검사는 경기과학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23세 때부터 개인 병원을 운영해 왔다. "대학 본과 4학년 때 선배 명사 초청 특강 수업에서 이종욱(1945~2006)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과 노태헌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 등을 봤어요. 그러면서 '의사로서의 사회 공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죠. '법을 공부해 기초 의학이나 과학 수사에 기여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그때 했습니다."

김상천 검사는 로스쿨 진학을 결심한 2008년, 5년 4개월간 몸담았던 직장(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에 사표를 던졌다. 대학 학부와 대학원(연세대·기계전자공학 전공) 시절까지 합하면 11년간 이어온 컴퓨터와의 인연을 내려놓은 것. "존경하는 연구소 선배가 늦깎이 유학생이 돼 미국으로 떠나는 걸 보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처음엔 저도 유학을 고려했어요. 어학 실력을 쌓기 위해 직장 생활 틈틈이 미국 작가 존 그리샴(57)의 법정 소설을 원서로 구해 읽었죠. 간결한 문장으로 구성된 법조문은 좋은 영어 교재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면서 점차 소설 속 법정에 흥미를 갖게 됐어요."

때마침 온 나라가 로스쿨 관련 법안으로 떠들썩했다. 연구원에 근무하며 자신의 전공 분야인 사이버 보안 관련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봐 오던 터였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로스쿨행을 결심했다. 이후 약 4개월간 법학적성시험(LEET)를 준비해 고향(강원 속초)과 가까운 강원대 로스쿨 1기 신입생으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나만의 원칙 세워 '공부, 또 공부'

김상천(왼쪽), 이선미 검사.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이었지만 이들의 표정은 봄날 햇살처럼 밝았다.

하지만 일명 '비법(非法·법학 비전공자)' 출신으로 학교 생활을 버티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김 검사는 "로스쿨 시험은 정답이 분명한 공대 시험과 그 성격이 완전히 달라 성적이 얼마나 나올지 예측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검사 역시 "첫 강의 땐 교수님 말이 전부 '외계어'처럼 들렸을 정도"라고 고백했다.

"제가 다닌 이화여대 로스쿨은 생명의료 분야에 특화돼 있어 보건의료 강의가 꽤 있었어요. 동기들에게 의학 용어를 알려줄 땐 어깨에 힘 좀 줬지만 나머지 시간은… 상상에 맡길게요."(웃음) 병원 운영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공부할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진 병원 일을 봤고 끼니는 학교로 가는 버스에서 해결했어요. 오후 2시부터 저녁까지 수업을 들은 후엔 도서관으로 직행했죠. 그날 배운 내용은 그날 소화하겠다는 원칙을 세워 자료를 정리했어요."

김 검사의 학습법은 좀 달랐다. "로스쿨 진학 후 첫 1년간은 학점이 엉망이었어요. 잠 못 자고 몸 상해 가며 공부해도 결과가 신통찮아 고민이 많았죠. 그러던 중 문득 대학 시절 공부법이 떠올랐어요. 컨디션이 좋을 땐 집중적으로 공부했지만 아닐 땐 무조건 쉬었거든요. 대신 '한 학기에 한 과목만 파고든다' '범위 내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훑는다' 같은 대원칙은 꼭 지켰죠. 그때처럼 제게 편한 방식으로 공부했더니 신기하게 성적이 오르더군요."

◇"'로스쿨 출신 1호'로서의 초심 간직할 것"


두 사람은 "'로스쿨 출신 1호 검사'란 사실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로스쿨 출신 법조인에 대한 시각은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죠. 제일 중요한 건 당초 정한 자신의 목표에 집중하는 거예요. 단, 이것 하나는 명심하세요. 뚜렷한 이상이 없다면 로스쿨 공부는 꾸준히 해나가기 어렵습니다."(김상천)

"로스쿨 제도는 선진국의 검증을 거쳐 도입된 만큼 장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국내에서 제대로 정착되려면 저 같은 1기 출신이 더 열심히 해야죠. 앞으로도 힘든 일이 많겠지만 그때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의 다짐을 떠올리며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이선미)

☞로스쿨

법학 이 외의 다양한 전공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설립된 3년 과정 법학전문대학원. 전국 25개 대학이 학부 과정 법학과를 폐지하고 신설했다. 2009년 1기 신입생을 받았고 올 2월 첫 번째 졸업생(변호사 자격증시험 합격생 1472명 포함)을 배출했다. 변호사 자격증 취득자는 법무부(검사직)나 로펌(변호사직) 등에 지원할 수 있다. 단, 검사가 되려면 법무부가 정한 단계별 전형(1차 서류 심사, 2차 5단계 역량 평가)을 통과해야 한다. 검사 임용자는 1년간 법무연수원 등에서 실무교육을 받은 후 실무에 투입된다. 한편, 연간 1000여 명의 법조인을 배출해 온 사법연수원 제도는 오는 2020년 폐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