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50·서울)씨는 지난 주말 시제(時祭)를 지내려 고향 전남 무안에 내려갔다가 올 4월 말에 꼭 이장(移葬)을 해야 한다는 집안 어른들 말씀을 들었다. "3년 만에 찾아온 윤달을 놓치지 말고 선영에 떼도 새로 입히고, 할아버지 묘는 새로 써야 한다"는 얘기였다.
윤3월(양력 4월 21일∼5월 20일)을 맞아 집안의 분묘를 손보는 개장(改葬)이 급증하고 있다. 개장하는 유골을 납골당에 모시기 위해 화장장(火葬場)을 찾는 사례도 덩달아 늘고 있다. '하늘과 땅의 신(神)이 사람들에 대한 감시를 쉰다'는 윤달에 이장(移葬)을 하거나 수의(壽衣)를 마련하는 풍습이 널리 퍼져 있는 탓이다. 예로부터 윤달은 '손(사람의 일을 방해한다는 귀신) 없는 달'이라 해서 궂은일을 해도 탈이 없는 '썩은 달'로 알려져 왔다.
대부분 15일 전부터 예약이 가능한 전국 주요 화장 시설에는 이미 예약과 문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 서울시립승화원(경기 고양)의 경우 개장 유골은 하루 14구까지 화장하는데, 17일까지 예약이 모두 찼다. 18일부터는 운영 시간을 연장해 하루 18구씩 화장하기로 했지만 이미 12구가 예약된 상태다. 남해추모누리영화원(경남 남해) 관계자는 "최근엔 매일 오후 6시까지 전 직원을 동원해 하루 최대치인 55건씩 화장한다"면서 "아직 윤달이 2주 넘게 남았지만 예약 문의 전화가 하루 수십통씩 걸려 온다"고 말했다.
윤달이 있는 해(윤년)마다 개장 유골 화장 건수는 급증한다. 2007년 3만4000건, 2008년 4만1000건이던 화장 건수는, 윤년인 2009년 8만7000건에 달했다가 2010년에 4만6000건으로 다시 줄었다. 서울의 경우 2009년 윤달 당시 하루 평균 화장 건수가 43건이었으나, 이듬해엔 하루 평균 8건에 그쳤다.
보건복지부 노인지원과 최영호 과장은 "윤달에는 선산에서 직접 불을 피워 남은 유골을 화장하다가 산불이 나기도 한다"며 "얼마 남지 않은 유골이라도 관할 시군구에 개장 신고 없이 화장하면 불법"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각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불법 화장을 단속하는 한편, 화장 시설을 확충한다는 방침이다. 3월 현재 전국 52곳인 화장시설을 내년까지 7곳 더 늘리고, 일부 장례식장(병원의 장례식장은 제외) 내에 화장로(爐) 설치를 허용하기로 했다. 또 환경친화적인 자연장(화장한 유골을 수목·화초·잔디 밑 등에 묻는 것)의 경우 주거·상업·공업 지역 내에서도 가능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입력 2012.04.05. 03:05
100자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