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제공

3일 국방부 화상회의실에 국방부, 합참, 한미연합사 소속 중령과 소령, 사무관 20명이 모였다. 영어공부를 위해서였다. 75세 '영어 선생님'은 직접 복사해 온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전몰자 추도 연설(Funeral Oration) 영문본을 돌렸다. 그는 "이 연설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치른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 한 것으로, 민주정치가 군주정치보다 왜 우수한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 중령, 첫 문단 해석해 보세요" 했다. 그러자 김 중령은 "네, 장관님 알겠습니다" 대답했다.

1993~1994년 31대 국방장관을 지낸 이병태(75·육사 17기·사진)씨가 영관급 간부들을 대상으로 국방부 영어 교습을 시작했다. 단순 생활영어가 아닌 국가정책, 군사전략, 전술 분야 고전(古典)과 최신 자료를 읽고 공부하는 시간이다.

영어 수업은 이 전 장관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지난달 김관진 국방장관에게 친필 편지를 보내 "국방부와 합참, 연합사 참모 장교들은 지속적으로 영어공부를 해야 하며, 내가 그들 공부의 선도에 서겠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본지 인터뷰에서 "참모 장교들은 미국 국방성의 연차 보고서, 일본·중국·러시아의 국방백서(國防白書) 등을 영어로 꿰뚫고 있어야 한다"며 "이 분야는 각국 참모 장교들의 전장(戰場)"이라고 했다.

김관진 장관은 "정말 좋은 생각"이라면서 각 부서에 지원자를 모집했고, 20명이 응했다. 3일 첫 수업에서 이 전 장관은 자신이 직접 마련한 8주 교과과정을 칠판에 적었다. 우리 국방백서부터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 소설가 김훈의 남한산성,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신세계질서(The New World Order)가 포함됐다. 이후 8주에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북한군사전략고찰 등 보다 실무적 자료로 공부하기로 했다. 매주(화·목·금) 3시간씩 총 48시간 과정이다. 영어 자료는 한국어로 번역하고, 한국어는 영작하면서 공부할 예정이다. 이날 수업에 참석한 국방부 조모 중령은 "예상보다 수준이 훨씬 높고 발표에 과제까지 있어서 대충대충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주(駐) 호놀룰루대사관 총영사를 지낸 이 전 장관은 61세 되던 1998년 미 유학길에 올라 2004년 텁스대 플레처스쿨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지금도 매일 평균 3시간씩 정치안보분야 영문서적과 잡지를 꾸준히 탐독한다. 이 전 장관은 참모장교가 구사하는 영어를 '무기(武器)'에 비유하며 "(영어) 능력을 갖추는 데는 오랜 기간 습관화된 공부의 관행, 인생 다른 면의 쾌락을 끊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퇴역한 장성들을 보면 대부분 한 달에 두세 번 골프 치고, 두세 번 저녁 만찬하면서 보냅니다. 저는 미천하나마 제가 쌓아온 지식과 지혜를 후배들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