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품달(드라마 해를 품은 달) 왕보다 봉실아줌마 데이비드 김이 더 멋지다" "천호진씨 너무 멋져요, 남편한테는 미안하지만^^."
TV조선 주말드라마 '고봉실 아줌마 구하기'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아줌마 팬들의 글이다. 모두 극 중 고봉실과 중년 로맨스를 펼치는 데이비드 김 역의 천호진(52)을 향한 '연정(戀情)'들이다. 천호진은 드라마에서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올백 머리에 검은색 정장을 입고 남성적 매력을 물씬 풍겨 호평받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만든 가구로 22일부터 나흘간 경기 파주 헤이리 예술인마을에서 '제1회 천목수&정목수' 전시회를 연다. 자신의 가구 브랜드 '비밥(BEBOP)' 런칭 전시회를 겸한 자리다. 16일 경기도 평택 촬영장에서 만난 천호진은 "나무를 깎아 가구를 만드는 과정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있다"며 "이 과정이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 정성을 쏟아야 하는 연기와 닮은 점이 많다"고 했다.
―언제부터 가구를 만들게 됐나.
"배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취미생활로 시작한 지 10년 정도 됐다. 좋아하는 일을 돈도 벌면서 오래하고 싶어 사업을 시작한 지는 5년 전부터다. 사업엔 소질이 없지만 손에 박힌 굳은살이 주는 '삶의 치열함'을 믿는다."
―가구를 만드는 게 연기에 도움이 되나.
"가구를 힘들게 만들고 나면 밤에 잠을 잘 잔다.(웃음) 가구를 만들면서 집중력도 생긴다. 배우도 이름을 얻고 자신이 가진 연기력을 마음대로 운용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 목공의 기다림의 과정과 비슷한 것 같다."
―드라마 고봉실을 자평한다면.
"시청률을 의식해 자꾸 극악해지는 다른 드라마들과 달리 고봉실은 우리 이웃들이 실제 살아가는 이야기를 따뜻하게 담고 있다. 불륜, 출생의 비밀 등이 아닌 실제로 일어날 개연성이 있는 일들이 그려지는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이 자신의 생활과 드라마를 견주어 생각하고, 위로도 받는 듯하다."
―고봉실과 그리는 중년의 로맨스가 화제다.
"중년의 의미는 '굳은살'이다. 모든 감정에 굳은살이 박이고, 어떠한 충격에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나이다. 이런 중년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데도 그동안의 드라마는 젊은 층 위주의 이야기였다. 물이 고이면 썩듯 드라마나 문화도 한쪽에 치우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중년의 사랑도 아름답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따뜻한 드라마는 막장 드라마보다 시청률이 안 나오는 게 현실이다.
"내가 출연했던 전작 드라마 '애정만만세'가 불륜에 출생의 비밀이 얽힌 막장드라마였는데 '배우의 사회적 책임감' 때문에 연기하는 데 너무 힘들었다. 내 연기를 보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 내 연기에서 시청자들이 인생의 다른 모습을 보도록 하자는 책임감이 있다. 그 드라마도 초반엔 안 그랬는데 점점 시청률을 의식해 막장으로 가더라. 막장드라마는 다신 하고 싶지 않다."
―후배들에게 무서운 선배로 알려져있다.
"난 후배들에게 더 무서워지고 싶다. 예전에는 선배에게 혼도 나면서 경험이 쌓이고 굳은살이 박였는데, 요즘 젊은 배우들은 매니저에게 가려져 (선배들과) 같이 섞일 틈이 없다. 배우란 자기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책임질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만한 실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작은 것부터 쌓아 큰 게 되는 게 세상 이치다. 요즘 젊은 배우들은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려고 해 안타깝다."
―자신만의 배우관이 있다면.
"고(故) 김무생 선생님이 '직업인으로서의 배우가 돼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예전엔 그 의미를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TV를 보고 아이들이 말과 행동을 쉽게 따라하는데, 배우는 적어도 정확한 발음기호에 따라 대사를 하도록 노력하는 등 책임감을 가지고 연기를 해야 한다. 흥미나 가십의 대상으로서의 스타가 아니라 진짜 배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