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가 뿌리를 허공에 둔 채 땅으로 잎을 떨궜다. 난초도 마찬가지다. 물구나무 선 대나무 '도수죽(倒垂竹)'과 물구나무 선 난초 '도수난(倒垂蘭·사진)'은 조선 후기의 문신 석촌(石村) 윤용구(尹用求·1853~1939)의 특기였다.
명문가문에서 태어난 윤용구는 형조참판·공조판서 등을 지내며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자 사직하고 평생 은일지사(隱逸之士)로 살았다. 거꾸로 세운 난죽은 일제강점기의 비통한 현실을 빗댄 것이다. 18일까지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는 '윤용구 회화전'에 그의 서화 12점이 나왔다. 당대의 명필이었던 윤용구는 조선왕조의 흥망성쇠를 상징하듯 포물선을 이룬 대나무 가지를 그리고, 나라 잃은 선비의 탄식을 담아 이렇게 적었다. '古鼎茶煙歇/秋鐙畵理深/寒窓風雨夕/臥聽老龍唫(옛 솥 차 향기 멎고/가을 등잔 앞 그림의 뜻 깊구나/찬 창가 비바람 치는 저녁/드러누워 늙은 용 울음소리 듣는다)'. (02)3217-6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