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 등 사회의식이 강한 작품을 써내 20세기 미국문학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병상에 누은 어느날 그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 "지금까지 나온 내 작품들은 사실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을 쓰기 위한 습작에 불과할 뿐이야."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이 소설 한 권에 쏟았다는 것이다.
소설은 구약의 창세기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스토리가 모티브다.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이 야훼의 진노를 사 저주의 땅 '에덴의 동쪽'으로 추방당한다는 성서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작품의 무대는 캘리포니아의 살리나스 밸리.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아 이곳에 비옥한 땅을 사들인 아담은 대농장주가 된다. 그러나 그의 두 아들 아론과 칼렙은 갈등을 빚어 마침내 아론은 죽음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곳에 '에덴의 동산'을 이루려는 아담의 꿈은 '형제 살상'으로 인해 산산조각 나 그의 농장은 '에덴의 동쪽'으로 변한다.
소설이 결말로 치달을 무렵 아담이 아론의 행방을 묻자 칼렙은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내가 아론의 보호자라도 되나요." 형제간의 알력과 반목이 결국 씻을 수 없는 죄악을 낳은 것이다.
'에덴의 동쪽'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대조적인 두 형제를 중심으로 풀었다. 아론은 선, 칼렙은 악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 이들을 통해 인간의 양면성과 원죄 등을 집중 조명한 대서사시다. 소설은 엘리아 카잔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제임스 딘(칼렙 역)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성서엔 의외로 형제에 관한 얘기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우애보다는 탐욕과 질투에 눈이 멀어 대개 비극으로 끝난다.
이사악의 두 아들 야곱과 에사우는 적대적인 형제관계의 전형이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 야곱과 충동적인 성격의 에사우. 야곱은 잔꾀를 내 형 에사우에게서 장자 상속권을 빼앗고는 늙고 병든 아버지에게서 축복까지 받는다.
나중에 야곱은 12 아들을 낳는다. 그가 가장 총애한 아들은 요셉. 하이라이트는 나머지 형제들이 음모를 꾸며 요셉을 노예상인에게 넘기는 대목이다.
처음엔 죽일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한 핏줄이어서 요셉을 팔아 치우는 것으로 상황을 끝내려 했다. 한마디로 아버지 몰래 요셉 하나를 상대로 '형제의 난'을 일으킨 것이다. 재산이 요셉에게 넘어갈까 시기심도 생기고 또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한 요셉이 미워 이 같은 '난'을 벌인 것이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보자. 아들이 유럽전선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아담은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아론의 죽음이 자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고백하는 칼렙.
하지만 아담은 그런 칼렙을 책망하지 않는다. 용서해주겠다는 말 대신 이런 말을 남기고 조용히 숨을 거둔다. "팀셸(timshel)…." 현대어로 옮기면 '너는 네 죄를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쯤이 되겠다.
'팀셸'은 카인과 아벨편에 나오는 히브리어로 소설의 주제어다. 어쩌면 스타인벡은 이 말을 독자들에게 풀이해 주기 위해 1만1000 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을 썼는지도 모른다.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오로지 인간 개인의 선택이자 의지에 달려있다는 게 '팀셸'의 참뜻이라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차명재산을 둘러싸고 형제 자매들 간의 상속 다툼이 예사롭지 않다.
장남인 이맹희씨에 이어 차녀인 이숙희씨까지 이건희 삼성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자 다른 형제들도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소송의 진행상황에 따라 나머지 형제들도 언제든지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게 재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러다가 세계적인 기업 삼성이 '에덴의 동쪽' 벼량 끝으로 내몰릴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형제간의 탐욕이 삼성의 근간을 뿌리채 흔들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다.
재물에 대한 욕심과 질투에서 비롯됐다는 인간의 원죄. 그래서 스타인벡은 물질만능의 삶을 살아가는 오늘의 사람들에게 '팀셸'이라는 준엄한 경고를 했는 지도 모른다. 탐욕으로부터의 구원은 바로 너 자신 안에 있다며... 이건희 회장과 그의 형제 자매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