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애인이 불편을 겪지 않고 공부하도록 큰돈이 드는 일부터 작은 보살핌까지 정말 많은 분이 도와주셨어요. 이제 졸업하면 이런 고마움을 사회에 갚도록 해야죠."

24일 서울대를 졸업하는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김예솔(24)씨는 하루 전인 23일 휠체어를 타고 4년을 다닌 학교 곳곳을 둘러봤다. 그의 휠체어는 도로 턱이나 계단에 막히지 않고 편안하게 굴러갔다. 미술대학의 엘리베이터와 건물 바깥의 구름다리도 그가 입학한 뒤, 그가 요청해서 만들어진 시설이다.

김예솔씨를 위해 서울대 미대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다섯 살 때부터 하반신 장애로 휠체어를 타는 지체 장애 1급인 김씨는 지난 2007년 장애인 특별 전형이 아닌 일반 수시 전형으로 합격했다. 합격증과 함께 걱정거리가 생겼다. 서울대 캠퍼스는 휠체어가 다니기엔 너무 가파르고, 계단이 많았다. 더구나 실습을 하고 수업을 듣게 될 미술대학 건물은 정문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언덕 위에 있었다.

그는 고민 끝에 2007년 1월 당시 이장무 서울대 총장에게 "주로 2~3층에서 수업을 듣는데, 휠체어로 강의실에 올라갈 수가 없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학교 측은 메일을 받은 지 6개월 만인 2007년 6월 미술대학 승강기 설치 공사를 시작했다. 완만한 경사로 서울대 내부순환도로와 미술대학을 이어주는 구름다리는 한 달 뒤인 2007년 7월에 착공했다. 공사비가 각각 1억5650만원과 1700만원 들었다.

김씨가 다닌 4년 동안 학교는 많이 바뀌었다. 미술대학에는 경사로 2곳, 장애인 승강기 2대, 장애인 화장실 2개가 추가로 설치됐다. 공사비 5억여원이 들었다. 대학 기숙사 화장실이 휠체어가 들어가기에 좁다고 건의하자, 학교 측에서 하루 만에 문짝을 뜯어고친 일도 있었다.

23일 오후 졸업 앨범을 찾으러 온 김예솔(24)씨가 본인 요청으로 만들어진 구름다리를 친구들과 함께 건너고 있다.

서울대 장애학생지원센터는 김씨에게 기숙사 청소와 세탁을 도와주는 생활 도우미와 강의실 이동을 도와주는 셔틀 차량을 무료로 지원했다.

장애를 가진 학생 70여명이 재학 중인 서울대에는 현재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 24곳, 출입구 경사로 53곳, 장애인 화장실 52곳, 장애인 전용 승강기 41개 등이 설치돼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김예솔씨를 계기로 장애인 학생 편의 시설과 지원 서비스가 잇따라 생겨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일찌감치 KT 입사가 결정됐고, 직무 교육을 받고 있다. 고객의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SI(서비스 혁신) 부문에서 KT 홈페이지 디자인을 담당하게 됐다. 작년 11월 경기도 성남 KT 본사에서 본 면접에서 "KT의 최연소 임원이 되려고 왔다"고 했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늘 세상을 향해 불편한 것을 고쳐달라고 요구했는데, 이제는 제가 남들이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돕는 일을 맡게 됐네요.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지체 장애 1급 김예솔이가 역경을 이겨냈다는 식의 기사는 싫다"고 했다. "도와주신 교수님, 친구들 모두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살 겁니다." 휠체어를 굴리는 그의 손이 세상과 악수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