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연구실에 앉아서 완전 범죄를 꿈꾸는 지능범들과 싸워요. 앉아 있는 '셜록 홈즈'가 된 기분이에요."

15일 서울 금천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감식센터에서 만난 홍희정(28)씨는 특수 제작된 목발을 짚고 있었다. 국과수가 개원한 지 58년 만에 처음으로 임용된 장애인 연구사다.

홍씨는 유전자감식센터에서 유전자 대조 일을 한다. 살인·절도·성폭력·교통사고 현장에서 나온 유전자 증거물이 과거 미제사건 때 나온 유전자와 일치하는지 비교 분석하는 일이다. 지난 한 달간 그가 찾아낸 동일인 범죄 일치 건수는 188건에 달했다.

그는 희귀 난치성 질환인 상의세포종(척수의 양성 종양)을 앓고 있다. 2004년 충북대 화학과 2학년 재학 중 처음 발병한 뒤 재발을 거듭해 큰 수술만 다섯 번 받았다. 이후 하반신이 마비됐다. 홍씨는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공부했고, 국과수 공무원 시험 중증 장애인 특별전형에 응시해 작년 11월 국과수에 합격했다.

홍씨는 어렵게 공부했다. 그가 중학생일 때 간판 가게를 하던 아버지가 암으로 숨졌고 가세가 기울었다. 어머니 김은래(54)씨가 명함과 판촉물 등을 인쇄하는 가게를 꾸려 3남매를 키웠다. 네 식구가 가게 2층의 10평 단칸방에서 지냈다.

국과수 개원 58년 만에 처음으로 임용된 장애인 연구원 홍희정(28)씨가 유전자감식센터 실험실에서 웃고 있다.홍씨는 희귀 난치성 질환인 상의세포종을 앓고 있다.

정희선(57) 국과수 원장은 "홍씨가 국과수 임용식 때 어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들어왔는데, 어머니에게 '따님 잘 길러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하자 모녀가 눈시울을 붉히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홍씨는 화학연구소 등에 입사해 연구원이 되고 싶었지만 석사 과정을 마칠 즈음 우연히 국과수 임용 공고를 보고 진로를 바꿨다. 400여명의 응시자 중 25명이 선발된 임용시험에 홍씨는 최연소로 합격했다.

이제 홍씨의 꿈은 국내 최고의 유전자 분석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10년이나 지난 미제사건일지라도 현장에 남겨진 유전자와 데이터베이스를 대조해보면 금세 드러나요. 세상에 완전 범죄는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