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게임 - 가상 인간을 괴롭히는 ‘고문게임’(The torture game)의 실행 장면. 쇠꼬챙이·면도칼·전기톱·총 등으로 ‘죽지 않을 만큼만’ 최대한 괴롭히는 것이 이 게임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심장이나 머리를 상하게 해 사람이 숨지면 게임은 끝나버린다.

지난해 7월, 투신자살한 70대 여성을 아파트 화단에서 발견한 한 고교생이 시신을 여러 차례 흉기로 찌르고 폭행까지 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야수 같은 범죄를 저지른 고교 3학년생 김모(17·충북 청주시)군은 뜻밖에도 얌전한 성격이었다. 그의 급우들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 말이 적고 내성적이었다"고 진술했다. 친구들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 일도 없고, 오히려 다른 학생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도 참고 지낼 정도로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군의 폭력성은 억눌리고 숨겨져 왔을 뿐이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청주 청남경찰서 A 경찰관은 "조사 과정에서 그 학생이 과거에도 힘없는 노인을 폭행해 입건됐던 사실을 확인했다"며 "숨겨진 폭력성을 자기보다 확실히 약한 사람에게만 드러내 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군은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늘 곧장 집으로 가 게임에 몰입했다. 사건 당일도 한참 게임을 하다가 산책을 나온 길이었다. 김군이 주로 한 게임은 FPS(First-Person Shooter·1인칭 총싸움) 등 폭력성이 강한 게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한 게임은 수두룩하다. 게임을 잘 모르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하고 있는 폭력 게임을 목격하면 기겁을 할 정도다.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것은 예사고 게임 조작을 능숙하게 할수록 더욱더 잔인한 살인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잔인함 자체를 '포상(褒賞)'하는 게임도 있다.

포박된 사람을 상대로 전기톱을 이용해 사지를 절단하거나 면도날을 이용해 뼈가 드러날 때까지 살점만 발라내면서도, 숨지게 하면 안 되는 가학적인 '고문 게임' 등도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유명 게임도 폭력성에서 예외가 아니다. 최근 출시된 ‘스타크래프트2’의 경우 등장인물 크기가 작아 부모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포격에 사지가 갈가리 찢기고 몸이 불타는 장면이 자주 묘사된다. 청소년들이 애용하는 국산 총싸움 게임 ‘서든어택’에서도 총에 맞는 순간 피가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정부는 게임물을 심사할 때 12·15·18세로 ‘이용 연령’을 구분 짓고 폭력과 선정성을 제한하지만 이런 등급제도는 이미 오래전에 무용지물이 됐다. 부모 등 성인 명의로 ID를 만들고 게임을 하는 걸 통제할 장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본지 취재진이 서울 시내 PC방 10여 곳을 취재해 본 결과, 어린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자기 연령에 맞지 않는 등급의 폭력 게임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았다.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지난해 12월 6개 주요도시 게임 이용자 12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에서 9~18세 청소년의 19%는 연령에 맞지 않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자수’했다. 그러나 게임업계 전문가들은 “나머지 청소년들도 연령을 속일 필요가 없는 게임을 해서 그렇지, 연령 제한 때문에 하고 싶은 게임을 못하는 청소년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폭력게임은 학생들의 폭력성을 높여 학교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우종민 교수는 "게임에서 죽이는 걸 반복하면 정서적 평가 체계가 무너져 감정과 행동의 연계가 끊어지게 된다"며 "이렇게 되면 '때려서 아프게 하겠다'는 생각 없이도 장난처럼 사람을 때리고, 죽일 수도 있게 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