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앙정보국(CIA)에서 9·11테러를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다 아프가니스탄 파견을 자원해 오사마 빈 라덴 추적에 나섰던 여성 요원. 명예회복을 노렸던 이 요원은 하지만 알카에다의 자살 폭탄 테러로 남편과 세 아이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워싱턴포스트(WP)는 29일(현지시각) 'CIA 요원가족, 자살폭탄 테러로 고통스러운 불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제니퍼 매튜스(사망 당시 45세) 가족의 사연을 소개했다.
오하이오주 시더빌대학 출신인 매튜스는 대학동창 개리 앤더슨과 결혼한 뒤 1987년 워싱턴DC 인근으로 이사하면서 CIA의 정보분석 요원으로 취직했다. 그가 처음부터 알카에다 관련 업무에 열의를 보인 건 아니었다. 1990년대 초 매튜스는 우연한 기회에 당시로서는 미국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빈 라덴을 담당하게 됐다. 하지만 1998년 알 카에다가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에 대한 폭탄 테러를 잇따라 감행하면서 매튜스는 '알 카에다 전문가'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9·11테러는 그의 경력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매튜스는 당시 가족들과 스위스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테러 소식을 들어야 했다. 특히 CIA의 내부 감찰 보고서는 "사전에 파악할 수도 있었던 테러징후를 놓쳤다"는 대목에 매튜스의 이름을 적시하면서 징계를 건의했다. 매튜스는 실제 징계를 받진 않았지만 이로 인해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고 남편 앤더슨씨는 전했다.
이후 런던으로 파견돼 약 5년간 한가한 일상을 보내던 그의 운명은 2009년 초 알 카에다 지도자 추적 요원을 찾는 공고를 본 뒤 달라졌다. 9·11 테러 이후 죄책감에 시달렸던 매튜스는 아프간 파견이 뒤따르는 이 업무에 자원했다. 전직 CIA 요원이었던 삼촌이 "현장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아프간 투입은 자살행위"라며 강력히 만류했지만 매튜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12세 딸과 9세, 6세 두 아들을 남겨두고 매튜스는 2009년 4월 아프간 동부 코스트주 CIA비밀기지에 부임했다.
그러나 그는 8개월 만인 같은 해 12월 동료 6명과 함께 자살 폭탄 테러의 희생자가 됐다. 당시 테러는 CIA가 알 카에다 내부에 투입한 요르단 출신 첩자 알 발라위의 소행이었다. CIA는 알 발라위가 빈 라덴 체포에 결정적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는 오히려 알 카에다에 포섭당해 C-4폭탄이 장착된 조끼를 입고 CIA 기지에 뛰어들었다.
남편 앤더슨씨는 아이들과 펜실베이니아 이글록에서 스키를 즐기다가 찾아온 CIA 요원으로부터 이 같은 비보를 전해들었다. 앤더슨씨는 이후 "CIA가 발라위에게 너무 쉽게 속아 결국 아내가 희생됐다"고 주장했으나, CIA측은 오히려 매튜스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가족들의 고통은 더 켜졌다. 게다가 매튜스의 부모와 삼촌은 앤더슨이 매튜스의 아프간행(行)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며 비난하고 나서 가족 불화까지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입력 2012.01.3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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