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자국산(産) 원유에 대한 유럽연합(EU)의 수입금지 조치에 맞서 유럽으로의 원유 수출을 즉각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이 조치가 실현되면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 등 남부 유럽 국가들의 직접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란이 원유 수출을 중단할 경우 국제 유가가 최고 30%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란 의회의 하산 가푸리파르드 의원은 25일 의회 웹사이트(icana.ir)에 올린 글에서 "EU가 우리나라 석유 수입 금지조치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기 전에 우리 정부가 먼저 유럽에 대한 원유 수출을 중단하는 법안을 29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도 26일 "우리는 유럽에 원유를 팔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EU는 지난 23일 외무장관 회의에서 이란과 원유 수입에 대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거나 기존 계약을 연장하는 것을 즉각 금지키로 결정했다. 다만 이미 수입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기존 계약은 오는 7월 1일까지 5개월간 유예키로 했다. 유예기간을 둔 것은 이란산 원유 의존 비율이 10% 이상인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로 하여금 대체수입선 마련 등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였다.

EU는 이란의 일일 원유 수출량 260만배럴 가운데 70만배럴을 수입한다. 이 중 이탈리아가 24만9000배럴, 스페인이 14만9000배럴, 그리스가 11만1000배럴로 남유럽 3개국이 73%를 차지한다. 특히 그리스는 원유수입량 가운데 이란산 원유가 차지하는 비율이 35%에 달해 이란의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재정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서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때문에 남유럽 3국 정부는 EU의 이란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5개월 동안 사우디아라비아나 러시아·이라크 등 다른 산유국들에 원유 수입 여부를 타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란 고위 관계자들의 잇단 언급은 따라서 남유럽 3국이 대책을 세우기 전에 역공을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이란이 원유 수출을 막아 이란 정부를 압박하려 한 EU에 대해 '유럽 수출 중단' 카드로 선수(先手)를 뒀다"고 보도했다.

한편 IMF는 25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란이 원유 수출을 중단하고 다른 산유국이 이란의 공급량 공백을 메우지 못한다면, 유가가 20~30%(배럴당 20~30달러)가량 상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작년 초 리비아가 내전으로 원유 생산을 중단하면서 전 세계 유가 상승을 부추겼던 상황에 필적할 만한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리비아 내전 사태 발발 전이던 작년 1월 5일 두바이유의 국제 시세는 배럴당 89.7달러였으나 내전이 발생하고 무아마르 카다피 친위군이 자국 내 원유시설과 수출항을 폭격한 3월 9일 이후에는 배럴당 110.55달러로 치솟았다. 2개월여 만에 유가가 23% 급등한 것이다.

로렌스 이글스 JP모간 연구원은 "이란이 EU의 제재에 대한 선제 조치로 원유 수출을 중단하면 시장의 예상보다 원유 공급난이 빨리 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