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데

'라데의 조카'가 K리그에서 뛴다. 주인공은 올해부터 성남 일화의 유니폼을 입게 된 블라디미르 요반치치(24·세르비아)다. 90년대 한국 프로축구를 주름잡았던 라데 보그다노비치(42·세르비아)가 바로 요반치치의 외삼촌이다.

라데는 1992년 포항에 입단해 5시즌 동안 55골35도움을 기록했다. 1994년엔 한 시즌 3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득점 2위(22골)를 차지했고, 1996년에는 K리그 최초로 10―10클럽(13골16도움)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황선홍 현(現) 포항 감독과 라데가 이룬 포항의 투 톱은 다른 팀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6세 때 축구를 시작한 요반치치의 롤 모델도 라데였다.

"또래 아이들처럼 축구를 좋아해서 시작했어요. 삼촌은 늘 축구를 하러 외국에 나가 있어 만날 수는 없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삼촌처럼 유명한 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요반치치의 한국행(行)에도 라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작년 12월 신태용 성남 감독은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찾은 세르비아에서 명문팀 파르티잔의 란코비치 코치를 만났다. 1996년 성남(당시 천안 일화)에서 활약한 란코비치는 신 감독에게 2011~2012 시즌부터 파르티잔에서 뛰고 있는 요반치치를 추천했다. 신 감독은 건장한 체격(187㎝·80㎏)에 스피드가 좋은 요반치치가 마음에 들었다.

12일 광양 공설운동장에서 만난 요반치치는“팀 승리에 기여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세러모니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며“골을 넣으면 그때 분위기에 맞는 나만의 즉흥 세러모니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남이 막상 영입을 추진하자 파르티잔에서 요반치치를 붙잡으려 했다. 파르티잔에선 16경기를 뛴 게 전부지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예선 마케도니아 클럽과의 경기에서 1골1도움을 올리며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때 삼촌이 나섰다. 자신이 현지에서 운영하는 풋살 경기장의 이름을 '포스코 아레나'라고 붙일 정도로 '친한파(親韓派)'인 라데는 적극적으로 파르티잔 구단을 설득했다. 올 시즌 인천 유나이티드와 코치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자녀 교육 문제로 결국 한국행을 포기했지만 조카만이라도 K리그 무대에 서게 한 것이다. 신태용 감독은 "양발을 다 잘 쓰는 요반치치는 라데 못지않은 킬러 본능을 지녔다"며 "2012년 K리그 최고의 히트상품이 될 것 같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요반치치는 삼촌으로부터 신태용 감독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삼촌은 신태용 감독님이 굉장한 선수였다고 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1995년 프로축구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성남과 포항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당시 성남의 신태용은 0―2로 끌려가던 후반 두 골을 터뜨렸고, 라데는 3대3 무승부를 만드는 극적인 동점골을 꽂아넣었다.

요반치치는 "한국팬들이 삼촌을 기억해주는 게 고맙다"며 "나도 삼촌 못지않은 좋은 경기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