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중순 경기도 여주 A중학교 3학년 김모(15)군 등 3학년 10여 명이 2학년 15명을 야산에 집합시켰다. 이들은 다짜고짜 후배들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학교 '싸움 짱'인 김군 등 3명이 유독 모질게 주먹과 발을 날렸다. 뺨을 때리다 배를 발로 차고, 쓰러지면 무릎으로 얼굴을 쳤다. 공포감을 조성해 금품을 갈취하기 위해서라고 김군은 나중 경찰에서 밝혔다. 코뼈가 어긋나는 등 크게 다친 학생들이 적지 않았지만 보복이 두려워 아무도 학교와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날이 시발점이었다. 김군 등의 집단폭행과 금품 갈취는 끝없이 계속됐다. 8월엔 한밤중 여주읍내 개천 다리 밑에서, 9월엔 읍내 공원에서 집단 폭행과 금품갈취를 했다. 공원에서는 비명을 못 지르게 옷을 입에 물리고 머리박기(일명 원산폭격)를 시키며 때렸다. 김군은 후배 7명에게 3차례에 걸쳐 자위행위를 시키는 등 성추행도 저질렀다.
김군 등 몇몇은 각자 만만한 2학년 3~4명을 따로 불러 수시로 폭행했다. 유흥비, 오토바이 수리비 등 돈이 필요할 때마다 불러내 두들겨 팬 뒤 "돈을 거둬 오라"고 시켰다. 이렇게 작년 11월까지 폭행과 금품갈취가 확인된 것만 61차례 260만원에 달했다.
피해 학생들이 용기를 내 학교에 도움을 요청한 것은 폭행과 금품갈취가 시작되고 7개월이 지난 11월 초였다. 1만~2만원씩 갈취해 가던 금액이 2학기 들어 5만~30만원 등 용돈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피해자들은 다른 후배들과 동급생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2학년 피해 학생 19명 중 10여 명, 1학년 피해 학생 10명 중 4~5명이 금품갈취와 폭력 피해자이면서 갈취자가 돼야 했다. 그렇게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해가는 극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아이들은 용기를 내 교무실을 찾았다.
이들 중 '피해자 겸 가해자'가 된 학생들은 학교 측에 도움을 요청한 뒤 자신들의 '갈취 범죄' 사실을 고백했다. 학교 측은 갑론을박 끝에 작년 말 이들에게도 사회봉사명령, 교내봉사명령 등 징계를 내렸다. 이들의 폭로로 학교폭력이 알려지면서 11명이 폭행 및 금품갈취로 징계를 받고 경찰 수사를 받았다.
자위행위를 강요하는 등 가장 심하게 폭력을 휘두르고 가장 많은 금품을 빼앗은 김군은 또 다른 범죄에도 연루된 사실이 밝혀졌다. 학교 측이 폭력 및 금품갈취 실태 조사를 벌이던 작년 11월 4일 이 학교의 다른 3학년 학생 4명 및 다른 학교 학생 1명과 함께 가출 여중생 2명을 집단 성폭행한 것이다.
김군은 폭행 피해 후배들로부터 "싸움을 제일 잘하고 가장 많이 괴롭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지목돼 작년 12월 강제 전학됐고, 앞선 성폭행 사건으로 지난 4일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김군과 함께 성폭행으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B군은 금품갈취와 폭행에는 가담하지 않았지만, 학교에서조차 "통제가 불가능한 학생"이라고 할 만큼 문제아였다. 분노와 불만이 가득해 교사에게 욕을 퍼붓고 약을 올리다 화난 교사에게 "돈 있으면 때려봐"라고 대들었다고 한다. 교사가 아버지를 불러 "이 아이는 상담으로 안된다.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치료를 받은 적은 없었다. 가난했기 때문이다.
A중학교는 여주에서도 기피 학교다. 전교생 670명 중 150여명이 기초생활수급자와 한부모 가정, 혹은 조손(祖孫) 가정이다. 급식지원을 받는 차상위계층 비율도 여주교육청 관내에서 가장 높다. 가해자 김군 역시 부모가 이혼하고 건설현장 노동자인 아버지가 혼자 키웠다.
김군은 5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처음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어디서 번호를 알았느냐"고 퉁명스레 말하고 끊었다. 두 번째 통화에서는 "나 때문에 고통당한 후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도 학교 선배들에게 똑같이 맞고 돈을 빼앗겼다"며 "내가 당했던 것보다 심하게 하진 않았던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가해 학생은 "누가 금품 갈취를 시키느냐"는 추궁에 "얘기하면 선생님이 해결해주실 겁니까"라며 끝까지 이름을 대지 않는 등 '누군가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냈다고 학교 측은 밝혔다. 경찰은 "중·고교에서 '폭력의 대물림'을 막아야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