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의 일종인 쌍살벌(paper wasp)은 얼굴에 화려한 무늬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한 마리, 한 마리의 무늬가 모두 다르다.

그렇다면 벌들도 서로 얼굴이 다른 것을 알까.

미국 미시간대 생태진화생물학과의 엘리자베스 티베트(Tibbetts) 교수 연구진은 쌍살벌을 'T'자 모양의 통에 넣고 갈림길 양쪽에 다른 쌍살벌의 얼굴 사진을 붙였다. 이때 한쪽 통로에만 전기 충격을 줬다. 실험을 하면서 전기 충격을 주는 통로 방향은 사진과 함께 계속 바꿨다. 만약 쌍살벌이 동료의 얼굴을 기억한다면 사진을 보고 전기 충격이 없는 쪽을 찾아갈 것이라는 게 이 실험의 목적.

말벌의 일종인 쌍살벌. 쌍살벌은 개체마다 특이한 얼굴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실험 결과 쌍살벌 중 여왕벌이 여러 마리가 있는 대규모 군집 생활을 하는 종의 경우 40번의 훈련 끝에 사진을 기억해 전기충격이 없는 쪽을 찾아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곤충 세계에서 인간처럼 상대의 얼굴을 기억하는 능력을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특이하게도 같은 실험에서 여왕벌이 한 마리만 있는 종의 쌍살벌은 아무리 실험을 반복해도 사진을 기억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지난 2일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여왕벌이 여럿 있는 군집에서는 사회계층 구조를 확실하게 유지하기 위해 서로 얼굴을 알아보는 능력이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