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싸움꾼이라던 케인 벨라스케즈의 패배는 의외의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벨라스케즈와 주니어 도스 산토스는 여러 면에서 현존 최고의 파이터들임에 틀림없다. 사실 누가 이기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이런 식은 정말 의외였다.

둘이 백중세인 건 예상된 부분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경기가 1분 만에 그것도 산토스의 일방적인 KO승으로 끝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

9전전승(8KO) 가도를 질주하던 벨라스케즈의 경기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감상해본 사람이라면 경악을 금치 못할 충격적인 패배였다.

벨라스케즈 앞에 선 파이터들은 너나할 것 없이 쩔쩔매거나 혹은 나가떨어지기 바빴다. 그의 가공할 펀치와 레슬링을 버텨낸 선수는 'UFC 수문장'으로 통하는 칙 콩고가 유일할 정도였다.

벨라스케즈는 타격, 레슬링, 그라운드, 체력, 투지, 젊음, 정신력, 성실함 등등을 모두 다 갖춘 올어라운드형 파이터였다. '제2의 표도르 에밀리아넨코'라는 별칭이 그저 얻어진 게 아니다.

그런 그가 1분 만에 나자빠진 자체가 '쇼킹'이었다. 유일한 단점으로 지적되던 피지컬의 열세가 13개월의 공백과 맞물려 최악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괴물' 브록 레스너의 챔피언 벨트를 강탈할 당시 입었던 오른쪽 어깨 회전근 부상이 회복된 건 확실해보였다. 산토스전의 초반 흐름을 볼 때 몸놀림이 어느 때보다 상쾌했던 건 맞다.

하지만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바로 경기감각이다. 종목을 막론하고 프로선수에게 실전감각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그 많은 전문가들이 경기 전 벨라스케즈의 실전 감을 우려했던 까닭이다.

산토스가 마음 놓고 휘두른 오른손 펀치에 목 뒤쪽 귀 부근을 강타당하고 쓰러진 건 결국 실전감각이 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평소 같았으면 피했거나 맞아도 빗맞을 수 있었던 걸 참 운이 없게도 신체균형을 관장하는 목 옆쪽을 정통으로 얻어맞고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파이터에게는 13개월이라는 공백이 엄청나지 않을 수 없다.

수험생이 공부를 1년만 쉬어도 다시 책을 잡기까지 그 괴리감이 상당한데 하물며 하루하루가 무섭게 변하는 싸움꾼들의 무대, 그 중심에 선 사람에게는 몇 배나 힘들 수 있는 시간이다.

MMA(종합격투기)는 쉽게 말해 싸움이다. 싸움꾼이 1년 동안 싸움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벨라스케즈는 이미 지고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중간에 한번쯤 경기를 치렀다면 가장 이상적이었을 테고 그렇지 못하다면 조금은 수월한 상대를 맞아 실전을 경험하고 난 뒤 산토스와 맞붙었다면 결과는 또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몸을 회복하고 실전을 방불케 하는 연습에 충실했다 하더라도 구름관중 앞에서 실제 경기를 뛰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게 될 운명이었는지 왠지 모를 불안감이 현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미국격투기계는 내심 벨라스케즈의 독주를 원하고 있었다. 멕시코계 미국인이지만 미국 아마스포츠의 엘리트코스를 밟고 UFC로 당당하게 입성한 천하의 싸움꾼이었던 그다.

전적에도 흠집하나 없이 무패가도를 질주하다가 정점에서 한번 꺾이고 만 모양새여서 흥행메이커들의 한숨소리가 크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데 있다.

물론 대미지는 크지만 오롯이 실력으로 졌다고 보기는 힘든 한판이었다. '한번 실수는 병가의 상사'라고 한번 패배는 천재 벨라스케즈에게 다시없을 보약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생애 처음으로 좌절을 맛본 천하의 싸움꾼이 절치부심할 일만 남았다. 훨씬 더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려도 좋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