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신여성들의 패션 필수품들. 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양산, 긴 저고리, 어깨허리 통치마, 손목시계.

패션을 향한 여인들의 사랑은 고금(古今)을 망라한 불변의 가치이다. 명품백이 현대 여성들의 패션 필수품처럼 인식되듯 시대마다 여성들이 갈망했던 유행 아이템이 있다. 그렇다면 1920년대 경성(京城·서울)을 누볐던 멋쟁이 신여성들의 '머스트 해브(must have·반드시 가져야 하는)' 아이템은 무엇이었을까.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문화체육관광부가 21일부터 30일까지 문화역서울 284(옛 서울역)에서 여는 '2011 대한민국 한복 페스티벌'은 '1920년대의 패션 리더들을 만난다'는 기발한 지점에서 출발한다. '한복, 근대를 거닐다'라는 주제가 말하듯 여느 한복 쇼와 달리 '근대'에 시계 바늘을 돌려놓고 시·공간적 배경을 맞췄다. 대표적인 근대 유산인 서울역을 무대로 당시의 모던 걸이 추구했던 패션을 보여준다. 100년 전 경성의 패션 리더들을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것이다. 유명 패션스타일리스트 서영희씨가 총감독을 맡았다.

30일까지 다목적홀에서 열리는 기획전 '근대의 패션리더들'은 개화의 상징적 존재인 신여성이 열광했던 패션 필수 아이템 11가지를 테마로 삼아 전시한다. 그중에서도 개량한복 교복을 입고 신식 교육을 받은 여학생들의 패션에 주목했다.

대표적인 예는 '나풀나풀 단발머리'. 여성의 근대화는 머리를 자르는 것부터 시작됐다. 신여성을 '모단걸(毛斷傑·modern girl)'이라고 부를 정도로 단발은 근대화의 상징이 됐다. 간소함과 실용성을 강조한 '긴 저고리'와 '어깨허리 통치마'의 조합도 빠질 수 없는 요소. 긴 저고리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옷을 보고 자극을 받아 비단보다 저렴한 인조견으로 길게 실용적으로 만들었다. 어깨허리 통치마는 남자의 양복 조끼에서 힌트를 얻어 치마허리에 매던 말기를 어깨로 올렸다. 검은색이 인기여서 검정치마에 흰색저고리가 여학생의 표상이 됐다.

이 밖에 장옷 대신 사용하기 시작한 '양산', 털실로 두툼하게 짠 '자줏빛 숄', 김활란이 동경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 양말에 구두를 신고 와 소개가 된 '구두', 여성의 신분을 보여준 '손목시계' 등도 모던 걸의 필수품 목록에 포함돼 전시된다. 당시 동덕여고·이화여고·숙명여고 등의 학생이 입었던 한복 교복이 전시돼 전통과 현대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1880년대 후반 서울 정신여학교 교복이었던 연보라색 저고리, 수박색 치마를 재현해 모델이 입은 모습.

앞서 21일 오후 5시 문화역서울 284 로비에서는 개막행사로 근대 한복 패션쇼가 열린다. 조진우·박선옥·김영진·이현경 등 한복 디자이너 6명이 참여한다. 이들이 무용가 최승희, 근대의 여학생,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 등을 주제로 만든 근대식 한복을 21세기의 모델들이 입고 런웨이를 걷는다.

행사를 기획한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최정심 원장은 "한복이 근대에는 멋쟁이들의 필수품이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일회적인 행사로 그치지 않고 시대별·인물별·소재별로 확장해 나가며 한복의 우수성을 알리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