꽹과리에 매혹된 일본 아저씨와 판소리를 하는 한국 아가씨가 만나 듀엣으로 노래를 부른다. 이들이 택한 악기는 우쿨렐레(하와이 민속악기). 국악 장단과 판소리 창법이 드리워진 이들의 노래는 앙증맞은 우쿨렐레 사운드와 어울려 싱그러운 단맛을 낸다.

국악에 매료돼 한국에 온 일본인 하찌(왼쪽)와 여덟 살 때부터 판소리를 해 온 애리가 뭉쳐 우쿨렐레 음악을 한다. 이들은“국악에도 우쿨렐레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음악을 하고 싶다”며“우리 음악엔 언제나 국악 장단이 흐를 것”이라고 했다.

하찌(57·본명 가스가 히로후미)와 황애리(24·국악그룹 '바라지' 메인보컬)는 5년 전쯤 처음 만났다. 당시 황애리는 우연한 기회에 한 카페에서 통기타를 치며 '한 오백년'을 불렀는데, 당시 듀오 '하찌와 TJ'로 활동하던 하찌가 그 모습에 반해버렸다. 두 사람은 2년 전 '서울 짬뽕'이란 4인조 프로젝트 밴드로도 활동하고, 올해엔 아예 '하찌와 애리'라는 듀오를 결성했다. 두 사람을 지난 13일 낮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판소리 하는 사람은 대개 보수적이지만 저는 호기심이 많아 기타를 배웠어요. '한 오백년' 악보를 보고 기타 치며 노래했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그래서 새로운 음악에 눈을 뜨게 됐죠."(애리)

"저는 록 음악부터 포크까지 다양한 음악을 했지만 사실 뿌리가 있는 음악을 늘 동경했어요. 국악에 빠진 뒤로 제 노래에는 늘 꽹과리와 장구 장단이 흐르고 있죠. 그래서 애리와 꼭 함께 음악을 해보고 싶었어요."(하찌)

1970년대 일본의 유명 록밴드 '카르멘 마키 & 오즈'에서 활동했던 하찌는 85년 도쿄에서 열린 김덕수 사물놀이 공연을 본 뒤 꽹과리에 매료됐다. 그는 "재떨이같이 생긴 악기에서 그렇게 다양한 소리가 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듬해인 86년 '꽹과리 소리를 찾아서' 무작정 한국에 온 그는 평택농악 인간문화재인 최은창(2002년 작고) 선생에게서 석 달간 꽹과리를 사사했다. 이후 일본에 돌아가 '도쿄 비빔밥 클럽'이란 퓨전밴드를 이끌다가 96년 아예 한국으로 건너와 강산에·전인권·서우영 음반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2005년엔 조태준이란 젊은 가수를 발탁해 '하찌와 TJ'로 활동했다. '하찌와 애리'는 그가 '하찌와 TJ'에 이어 한국서 만든 두 번째 팀이다. 그의 아내(53)와 두 딸은 일본 도쿄에 살고 있으나 하찌는 경기 일산에 스튜디오 겸 집을 마련해서 살고 있다.

애리는 판소리의 고향인 전북 남원 출신 아가씨다. 그는 여덟 살 때 영화 '서편제'를 보고 펑펑 울었다. "(서편제의 주인공) 오정해처럼 되고 싶어서 아빠를 졸라 광주의 전인삼 명창을 찾아갔어요. 그때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죠." 전인삼 명창에게서 춘향가를 사사한 그는 남원의 박양덕 명창으로부터 심청가와 흥보가를 사사했고 중앙대 음악극과에 진학했다. 남원 춘향제에서 판소리 대상을 받을 만큼 주목받는 소리꾼이다.

"처음에는 우쿨렐레 듀오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저씨가 '내 곁에'란 노래를 가져와서 불러보라는 거예요. 한번 불러보니 내 목소리랑 정말 잘 어울리더라고요."(애리)

하찌는 올해로 15년째 한국에서 대중음악을 창작·연주하고 있다. 그의 새로운 시도는 인디음악계에서 주로 호응을 얻고 있다. "나는 항상 메이저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인디가 돼 있더라고요. 한국에서 메이저는 완전히 연예인이니까 그렇게는 할 수 없고…. 그래도 내 마음은 언제나 메이저예요. 하하하."

애리는 올겨울 '산(山)공부'에 들어갈 계획이다. 박양덕 명창이 있는 남원 운봉에 내려가 목청을 다시 틔울 계획이다. "한 두어 달은 산공부를 해야 돼요. 판소리는 기계와 같아서 돌리지 않으면 바로 녹이 슬거든요. 이번 겨울에 소리 연습을 안 하면 저는 그냥 '하찌와 애리'의 애리로만 남을 거예요." 애리의 '산공부 계획'에 하찌의 표정이 살짝 우울해졌다.

이들이 지난 8월에 낸 첫 음반 제목은 '꽃들이 피웠네'다. 하찌가 지은 제목이어서 문법에 맞지 않지만, 그냥 쓰기로 했다. "시(詩)는 맞춤법 틀려도 양해되잖아요. 처음엔 틀려서 걱정했는데, 나중엔 그냥 '이게 우리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한국어 서툰 아저씨와 털털한 아가씨가 만났으니까요." 애리의 말이다.

두 사람은 이날 '몽금포 타령'을 연습하고 있었다. 하찌가 받아 쓴 가사에 '늦바람 블라고 성황님 조른다'부분에 오자(誤字)가 보였다. 고쳐줄까 하다가 모른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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