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기자, 스윙을 봐. 저 거구에 부드럽잖아."
최고는 최고를 일찌감치 알아봤다.
2004년 시즌 초 부산 사직구장이었다. 7일 영면한 장효조 전 삼성 감독의 눈은 롯데 이대호를 향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미완성 거포였던 이대호의 무궁무진한 성장가능성에 대한 주목이었다.
2001년 프로 입단 후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이대호는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고 마음고생도 심했다. 체중 문제 등을 놓고 코칭스태프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04 시즌 초까지만 해도 이대호는 일반인들의 관심 밖 인물이었다. 심지어 전문가들 중에서도 성장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자실에서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경기를 지켜보던 중 이대호가 타석에 섰다.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 타자 장효조 감독의 시선이 궁금했다. '이대호가 대타자가 될 수 있을까요?' 장 감독의 눈이 둥그래졌다. "정 기자, 아직 야구 볼 줄 모르는구먼. 저 거구에 저 정도로 유연한 선수는 정말 보기 드물어요. 저 큰 몸으로도 3루 수비를 해내잖아. 두고 봐요. 우리나라 최고 거포가 될 거야."
예언이 실현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실제 이대호는 바로 그해 야구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마련했다. 양상문 감독의 전폭적 지지 하에 무려 132경기에 출전, 20홈런과 68타점을 기록했다. 데뷔 후 첫 두자릿수 홈런과 50타점을 넘긴 시즌이었다. 비록 타율은 2할4푼8리에 그쳤고 삼진(78)이 볼넷(38)에 비해 2배 이상 많을 정도로 정교함에 보완과제를 안고 있었지만 거포로서의 잠재력은 확인시켜준 시즌이었다. 이전 3년간 통산 134경기에서 415타수 112안타(0.270)에 12홈런, 46타점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변화의 시작이었다. 장효조 감독의 예언대로 이대호는 2년 뒤인 2006년 타율(0.336), 홈런(26), 타점(88), 장타율(0.571)의 4관왕을 차지하며 국내 최고 타자로 거듭났다. 1984년 이만수 이후 진정한 트리플크라운(타율, 홈런, 타점)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로 우뚝 서며 장 감독의 혜안을 증명했다.
통산타율 3할3푼1리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긴 고 장효조 감독. 현역 시절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선구안 만큼이나 선수를 알아보는 안목도 탁월했다. 2005년 삼성 스카우트로 현장에 복귀해 유망주를 발굴하고 지도자로 2군 꿈나무를 육성하던 장 감독의 부재는 한국프로야구의 선수 발굴 및 육성 측면에서도 뼈아픈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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