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 좌파가 자유민주주의를 문제 삼는 것은 신자유주의와 혼동했기 때문인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보다 심화된 높은 단계의 특성을 말한다."
세계적인 민주주의 이론 대가인 래리 다이아몬드(60)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17일 "한국 내 '자유민주주의' 논쟁은 자유민주주의를 오해한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근 학계에서는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역사교과서에 '민주주의'란 표현이 '자유민주주의'로 변경된 것을 놓고 "자유민주주의를 명확히 해야 한다"(한국현대사학회 등 우파 학자)는 주장과 "민주주의로 충분하다"(일부 진보좌파)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2008년 6월 뉴스위크가 '최고의 민주주의 전문가'로 꼽은 학자이자 '한국의 민주화 공고화'(2000년·공저)를 내는 등 국내 사정에도 밝은 그는 이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정성헌) 초청으로 방한, '퇴조하는 제3의 민주화 물결 속의 동아시아'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강연에서 "최근 5년 사이 국제사회에서 민주화는 퇴조 현상을 보였다"면서 "이는 민주화가 급속히 이뤄지는 과정에서 제도화가 따르지 못했고, 일부 권위주의 국가에서 역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본지와 별도 인터뷰를 갖고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
―최근 국내에는 한국 헌법의 정체성을 놓고 '자유민주주의'냐 아니냐 논쟁이 붙었다. 민주주의 이론가로서 어떻게 보나.
"정치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를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liberal)'는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라 권력의 자의적 행사에 대한 제어를 말한다. 민주주의가 최소한의 기준에서 자유 공정 선거를 통해 공직자를 선출하고 시민 참여를 포용하는 것을 뜻한다면,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심화하면서 보다 높은 단계의 특성(quality)을 갖게 되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강한 통제, 강력한 법치주의, 정부의 높은 투명성, 개인 권리의 폭넓고 두터운 보호 등이 그 내용이다."
―당신은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입헌적 자유주의'라고 한 적이 있다.
"한국 내 좌파가 '자유민주주의'를 꺼린다면 시장에 대한 적절한 규제의 부재를 지적하고 시장의 희생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미진함을 말하려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는 무관한, 정책 경쟁의 문제이다."
―최근 논쟁은 사실상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론자 간의 대립 같은 인상을 준다.
"한국 역시 (다른 선진국에서) 아주 익숙한 이념 경쟁에 다다른 것 같다. 시장주의 접근과 규제 완화를 앞세우는 중도우파와 국가개입 경제 및 국가지출에 의한 사회보장, 불평등 해소를 추구하는 중도좌파가 맞서는 형국 말이다."
―민주주의 발전 단계의 보편적 현상이란 뜻인가?
"한국 정치에는 정당이나 이념 구분 외에 지역 요소도 개입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좌파 진영이 사회 불평등 가속화에 우려하는 것을 이해한다. 오늘날 경쟁이 고조되는 세계 환경에서 낙오자가 되고 있는 노동자와 서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세계 공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우파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로부터 어떻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보존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심각히 생각해야 한다. 반면 좌파는 일자리를 만들고 보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적극 개입하기를 바란다면, '지속가능한 사회정의'를 이룰 방법과 비용 충당 방안에 대해 답해야 한다. 정치권이나 유권자나 절충점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나라나 선거 때마다 정치인은 슬로건을 쉽게 내세우지만 어려운 질문은 비켜간다. 그럴 때일수록 어려운 질문에 답하도록 강하게 압박해야 하는 것이 언론이나 학자들, 독립적인 평론가들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