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최종병기 활'은 무거운 역사의식은 덜고 활에만 집중한 덕에 재미있는 영화가 됐다.
주인공 남이(박해일)는 역적의 자식이다. 광해군의 외교 노선을 따르던 아버지가 인조반정 직후 역적으로 몰려 죽은 뒤, 아버지 친구 집에서 여동생 자인(문채원)과 숨어 지낸다. 나이는 스물여덟인데 사냥하고 술 마시는 것 외엔 하는 일이 없는 한량이다. 활 하나는 기가 막히게 쏜다.
그러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난다. 청나라 군대가 자인을 붙잡아가고 남이는 여동생을 구하고자 활을 들고 나선다. 청나라의 신궁(神弓) 주신타(류승룡)는 이런 남이를 죽이려 한다.
영화 구조는 단순하다. 활 잘 쏘는 두 남자가 서로 쫓고 쫓기며 싸운다. 조선시대가 배경이지만 말 타고 추격하며 싸우는 장면들은 카우보이가 나오는 옛 서부극과 유사하다. 주인공이 여동생을 구한다는 설정은 리암 니슨 주연 '테이큰'이나 원빈 주연 '아저씨'와 닮았다. 그만큼 장르적으로 익숙한 '추격 영화(chase film)'다.
자칫하면 식상할 수 있는 장르에서 제법 신선한 영화가 탄생한 것은 활이라는 소재 덕이다. 어린 시절 뒷동산 활터에서 활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는 김한민 감독은 전통 활의 질감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특히 시위를 당기고 과녁을 조준하는 정적(靜的)인 모습과 날아가는 화살의 역동성을 번갈아 사용해 액션 템포를 조절한 게 인상적이다. 체구가 작고 날렵한 남이는 곡사(曲射·활을 곡선으로 휘어지게 쏘는 것)에 능하고,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주신타는 육량시(六兩矢·60돈짜리 화살)를 쏜다는 설정도 적절했다. 활통에 몇 개 남지 않은 화살 갯수는 긴박함을 더해줬다.
영화 속 청나라 장수들은 지금은 거의 사어(死語)가 되어버린 만주어로 연기했다. 세세한 부분까지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는 점이다. 화살도 깃털 느낌을 망가뜨리지 않으려고 기계가 아니라 사람 손으로 직접 쐈다고 한다.
사극인데도 홍일점 자인 캐릭터를 활 쏘는 당찬 여성으로 그린 게 새롭다. 제작진에 따르면 과거에는 아녀자도 활을 잘 쏘았다 한다. 하지만 오누이의 애정을 상징하는 꽃신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영화 막판엔 자인이 '구두에 집착하는 여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상영중. 15세 이상 관람가.
[이것이 포인트]
#장면
몰래 숲 속에 숨어 자신을 뒤따라오는 청나라 정예부대 '니루'의 숫자를 센 뒤 한 번에 셋을 해치우는 남이. 화살이 모자라 한 번이라도 빗나가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대사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남이가 말하는 곡사의 비법)
#이런 분들 보세요
제대로 만든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보며 머리 식히고 스트레스 푸시고 싶은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