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래는 대학(창원대)을 졸업하면 창원에서 미술학원 강사로 일할 생각이었어요. 지방대 미대 출신인 제게 전업작가의 길은 너무 멀어 보였어요. 그런데 아시아프에 참여하고 나니까 뭔가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수도권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연하기만 했던 꿈이 또렷하게 눈앞으로 다가왔어요."

김정미(27)씨는 2008년 제1회 아시아프에 참여해 작품 세 점을 모두 팔았다. 작품 값 500여만원으로 이듬해인 2009년 홍익대 대학원에 등록했다. 올 전시 첫날 김씨는 작품을 모두 팔았다. 1, 2, 4회 '3회 연속 매진'의 영광이다.

아시아프는 중앙무대에 진출할 방도를 몰라 고민하던 우리에게 길을 열어줬어요.” ‘아시아프’ 1부 전시 마지막날인 7일 오후 전시장에서 만난 김정미·김지선(왼쪽부터)씨. 벽에 걸려 있는 큰 작품이 김지선씨의 ‘Forming History’, 앞에 놓인 작품이 김정미씨의 ‘자연의 추상성’이다.

#2. "지방대(충남대) 출신인 저에겐 공모전과 미술대전이 아니고는 '전국구'에 진출할 길이 없었어요. 아시아프에 참여하고 나니까 기획전 응모 기회도 생기고, 서울 갤러리 대표로부터 연락이 오기도 했어요. 그 인연으로 크진 않지만 서울에서 개인전도 세 번 열었어요." 1회와 3회에 이어 올해에도 아시아프에 참가한 김지선(29)씨의 작품 세 점 역시 첫날 모두 매진됐다.

김정미씨는 1회 아시아프 때부터 쭉 숲을 알록달록한 빛깔의 막대 사탕처럼 그리고, 그 숲 속에 얼룩말을 넣어 얼룩말의 무늬와 숲의 색깔이 잘 구분되지 않도록 한 작품을 출품해 왔다. 김지선씨는 아크릴 물감을 채운 주사기로 패널에 세밀한 점을 찍어 청화백자를 비롯한 조선시대 도자기를 표현하는 작업이다. 두 작가 모두 자신만의 독창성으로 컬렉터들의 눈길을 잡은 것이다.

미대생 8만명 중 약 5만명이 지방대

올해 4회째를 맞는 대학생·청년작가 미술축제 '아시아프'가 지방 출신 미술인들의 '활로'로 부각되고 있다. 올해 아시아프 참여작가 777명 중 국내작가는 724명, 이 중 서울 및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대 미대 출신 작가 수는 180명으로 24.86%에 달한다. 지난해 아시아프의 경우에도 국내 참여작가 722명 중 173명이 지방대 미대 출신으로 23.96%였다. 작품도 인기가 있다. 올해 1부 아시아프 첫날에 모두 작품이 팔린 12명 중 4명이 지방 출신이다.

현재 전국의 미대 수는 135개, 이 중 서울·수도권을 제외한 지방대 미대는 110개다. 전국 미대 정원 8만여명 중, 지방대 정원이 약 5만3000명이다. 해마다 수많은 학생들이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지방대 미대에 입학하지만 졸업할 때가 다가오면서 큰 걸림돌을 만나게 된다.

서울 중심의 미술 인프라

지방 미술인들의 작업 환경에 가장 큰 장벽은 서울 중심의 미술계 인프라다. 김지선씨는 "컬렉터, 미술애호가, 갤러리들이 다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작가들을 지원하는 입주시설도 마찬가지다"고 했다. 김정미씨는 "석사 1년차 때 홍익대 대학원에서 전시를 했는데 관람객이 학부 때 졸업전시보다 비교할 수 없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아시아프 참여작가인 신미화(31·창원대 대학원 졸업)씨는 "서울에서 전시회를 가지려면 대관료와 운송료, 숙식비가 만만치 않다. 대관료가 없는 행사가 있어야 작품을 홍보하고 다른 작가들과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달성 금산갤러리 대표는 "사실 지방 출신 미술인들을 발굴하기가 쉽지 않다. 대학 졸업전시 같은 경우도 거리가 머니 일일이 가서 보기가 힘든 실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작품보다 학벌 먼저 묻는 컬렉터

아직도 미술수요자, 컬렉터들이 서울대·홍익대 등 소위 '명문대 미대' 출신들의 작품을 선호하는 것도 지방대 미대 출신 미술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벽'으로 작용한다. 김정미씨는 "아시아프에서도 관객들이 그림을 살 때 미술작품 내용보다는 '출신 학교가 어디냐'를 많이 물어봤다. 요즘은 미디어와 교통의 발달 덕에 옛날과 달리 지방 출신이라고 해서 견문이 좁은 것도 아닌데도 그래서 의외였다"고 말했다.

알루미늄판에 에칭 기법으로 극사실주의적 인물화를 그리는 한영욱(48)씨는 지난해 4월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작품이 추정가의 5배를 웃도는 가격에 낙찰되는 등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 그런 그에게도 한때 '지방대 출신'이라는 아픔이 있었다. 강원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지방대 출신이라 공모전에 작품을 내도 입상하기 어려웠다. 유명 대학 출신 교수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0년 홍익대 서양화과에 편입한 한씨는 "학교가 바뀌자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공모전에서도 상을 받게 됐고, 나도 자격지심이 사라졌다"고 했다.

서성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는 "작품이 좋은데도 지방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 지방대 미대생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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