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실력파 가수들의 화려한 무대로 매주 화제가 되고 있다. 기존 곡의 장르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곡들이 선보여지면서 새롭게 주목받는 이들이 있다. 바로 '편곡가'다. 이들은 발라드를 록으로 성인가요를 블루스로 해석해 장르를 넘나드는 무대를 만들어 내는 1등 공신들이다. 미디어 시장이 확대되고 콘텐츠 생산이 활발해지면서 편곡가의 활동 영역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나는 가수다'에서 가장 변화무쌍한 무대를 선보인 김범수의 편곡가 돈 스파이크(본명 김민수)와 개봉 일주일 만에 5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이지수 음악감독을 만나 편곡가의 세계에 대해 들었다.

편곡이란?

이 감독은 "작곡이 건물의 골조를 만드는 것이라면 편곡은 인테리어에 해당한다"고 했다. 기존 곡의 멜로디를 가지고 간단하게는 가수의 목소리에 따라 음역을 높거나 낮게 바꾸는 것부터 악기의 구성, 새로운 화음의 도입 등 여러 '자재'를 활용해 건물을 꾸미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골조에도 변화를 줘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곡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이 감독은 "영화 음악은 특히 극의 흐름과 함께 호흡해야 하기 때문에 악기의 선정부터 배치에 이르기까지 편곡적 요소가 무척 중요하다"고 말했다.

돈 스파이크는 편곡자를 '발가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히는 재단사'라고 했다.

"같은 사람이라도 교복을 입으면 학생, 경찰복을 입으면 경찰로 보이는 것처럼 편곡가가 어떻게 재단해 입히느냐에 따라 완전히 새롭게 바뀝니다. 잘 된 편곡은 가수의 매력을 더욱 부각시키지만 잘못된 편곡은 고유의 색깔마저 잃어버리게 하죠."

돈 스파이크(왼쪽), 이지수 음악감독(오른쪽).

편곡자가 되려면?

이 감독과 돈 스파이크는 각각 서울대연세대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다. 외모도 활동 분야도 전혀 다른 이들이지만 4~5세부터 피아노를 시작해 정통 음악 교육을 받으며 실력을 키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감독은 대학 1학년 때 재능을 인정받아 드라마 겨울연가(2002) OST로 데뷔한 뒤 영화 올드보이, 실미도(이상 2003), 혈의 누(2005) 등의 OST에 참여했고 2005년 '안녕, 형아'에서 음악 감독으로 처음 발탁됐다. 작곡, 편곡, 음악감독은 물론 연주자로도 활동하며 '영화 음악계의 젊은 거장'으로 통한다.

반면 돈 스파이크는 '잡초'의 길을 걸었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그룹 포지션의 피아노 객원 멤버로 대중음악계에 발을 들여놨다. 대외적으로는 객원 피아니스트였지만 청소, 심부름, 짐꾼 등 허드렛일은 모두 막내의 차지였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실력을 쌓은 그는 화요비·휘성·박효신 등 실력파 가수들과 작업하며 대중음악 편곡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두 사람은 "정통 작곡 수업을 받으며 기초를 다지고 다양한 음악을 접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반드시 클래식을 전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 작곡가로 알려진 조영수씨의 경우 연세대 생명공학과 출신이고 손담비의 '미쳤어' '토요일 밤에' 등을 작·편곡한 용감한 형제의 경우는 정규 음악 수업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분야를 파고들어 성공한 사례다. 요즘은 유튜브나 블로그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는 젊은 음악인들이 늘고 있다.

편곡 시장 점차 확대될 것

대중가요는 물론 영화, 드라마, 방송광고 등 미디어 산업이 발전하면서 편곡 시장은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이 감독은 "음악 시장이 점점 전문화·세분화되면서 분야별로 특화된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역시도 이번 '마당을 나온 암탉' 작업을 하면서 오케스트라, 스트링(현악) 편곡 전문가 등과 함께 공동으로 작업했다. 돈 스파이크도 '나는 가수다'에서 구창모의 '희나리'를 편곡할 때 일렉트로닉 음악 전문가인 구준엽, 디제이(DJ) 포스피노 등과 공동 작업했다.

반면 음악에 대한 청소년의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실용음악 전공자가 늘면서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돈 스파이크는 "1996년 3000명 수준이었던 작·편곡가의 수가 지금은 1만명 이상이다. 하지만 대중가요 차트 100위 안의 곡은 10~20명의 유명 작·편곡가가 만든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진정 음악이 좋아서 뛰어들어야 어려운 과정을 겪어도 행복하게 음악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좋은 편곡자가 되기 위한 요건에 대해 묻자 두 사람은 입을 맞춘 듯 "많이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입력된 것이 있어야 출력할 것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필(feel)'로 쉽게 쓸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대중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치밀하게 콘셉트를 잡고 트렌드를 파악해야 하며, 끈기와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