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가운뎃손가락 끝이 엄지손가락 끝에 가 닿았다. 손이 아니라 연꽃인 것만 같다. 경주 남산 약수골 마애여래입상의 수인(手印)은 '전법륜인(轉法輪印)'.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뒤 다섯 비구에게 처음 설법할 때의 손 모양이다. 안도현 시인은 이 사진에 '내 손안에 연꽃 피면 그 향기로 너에게 건너가리'라는 짧은 시를 붙였다.
8일 오후 개막해 다음 달 13일까지 계속되는 국립춘천박물관 특별기획전 '부처님의 손'에는 한국의 대표적 승려 사진작가였던 관조(觀照·1943~2006) 스님이 찍은 부처님의 손 사진 20점이 전시된다. 사진마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20명의 짧은 시가 붙었다.
생전의 관조 스님은 사진을 통해 '먼지 한 톨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一微塵中含十方)'는 화엄 세계의 정신을 추구한다는 평을 받았고, 20여권의 사진집을 펴냈다. 박물관은 "춘천에 사는 소설가 오정희씨에게 시인 20명을 추천받아 관조 스님의 사진을 보여 드리고,짧은 한 문장으로 된 시를 부탁했다"고 했다.
석가모니 부처는 무수한 설법을 펼쳤지만 '한마디도 설한 바가 없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깨달음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다(不立文字)'는 것이다. 불상 조각은 그래서 문자를 떠나 부처님의 깨달음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됐다. 관조 스님은 생전에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고 한 '금강경'의 말과 같이 깨달음의 순간을 낚아채 사진에 담는다"고 했었다.
사진 속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 약사여래좌상의 왼손 위에는 아픈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해주는 약합(藥盒)이 놓여 있다. 김용택 시인은 그 아래 '내 손이 가만히 있으니 세상이 다 고요하구나'라고 썼다.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아래에는 '손은 꽃이다.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라는 문정희 시인의 시가 달렸다. 강은교·김광규·김명인·도종환·유안진·이문재·정현종 등이 모두 나름의 깨달음을 담은 짧은 시구들을 지었다.
관조 스님은 별세 전 마지막 가시는 길의 소회를 묻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삼라만상이 천진불이니 한 줄기 빛으로 담아보려고 했다. 내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마라. 동서남북에 언제 바람이라도 일었더냐!" (033)260-1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