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 중심부 유니언스퀘어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쇼핑몰 '웨스트필드(Westfield) 샌프란시스코'는 겉보기엔 여느 평범한 쇼핑센터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지하 푸드코트는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온 주부들과 일본 '라멘'처럼 독특한 동양 요리를 맛보기 위해 시내로 몰려나온 젊은이로 북적거렸다.
쇼핑센터와 연결된 2개 백화점(블루밍데일·노드스트롬)까지 총 13만9354㎡에 달하는 웨스트필드 부지는 넓긴 하지만, 압도적이지는 않다. 호화로운 걸로 따져도 뉴욕이나 런던 고급 백화점에 댈 바는 아니다. 그런데도 올해 미국도시연구소는 특별할 게 없어 뵈는 이곳을 도심 복합 개발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았다. 웨스트필드 샌프란시스코 지점의 특별함은 외양보다 '개발 스토리'에 있기 때문이다.
◆쇠락하던 빌딩과 쇼핑센터를 묶어 개발
이곳은 건물용도와 소유주가 완전히 달랐던 두 개의 건물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낸 대표사례다. 지금의 웨스트필드 샌프란시스코 건물은 1896년 지어진 상업용 건물 엠포리엄 빌딩과 샌프란시스코 쇼핑센터라는 두 건물을 터서 하나로 만든 것이다.
1998년 부동산 개발업체 '포레스트 시티(Forest City)'는 미국 최대 백화점 업체 '페더레이티드 백화점(Federated Department Stores)'이 소유하고 있던 엠포리엄 빌딩을 매입했다. 당시 빌딩 내 매장 대부분은 텅 비어 있던 상태였다. 그럼에도 소유주가 건물을 허물지 않았던 이유는 샌프란시스코 지진(1906년) 이후 파괴됐다가 1908년 복구한 엠포리엄 빌딩은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에게 상징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포레스트 시티가 엠포리엄 빌딩 개·보수 공사를 진행 중이던 2002년 엠포리엄에서 10여m 정도 떨어진 옆 건물을 대형 쇼핑몰 체인인 웨스트필드가 사들여 샌프란시스코 쇼핑센터를 열었다. 그때까지도 두 건물 사이의 연결고리는 없었다. 하지만 2003년 포레스트 시티와 웨스트필드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두 건물을 합쳐서 하나의 큰 쇼핑몰을 만드는 게 어떨까' 하는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됐다.웨스트필드 그룹 CEO인 피터 로이(Lowy)는 "둘의 결합이 샌프란시스코의 명소, 나아가 세계적인 쇼핑지가 될 것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확신의 근거는 다름 아닌 환상적 입지에 있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인 도심 한복판 관광명소 유니언스퀘어에서부터 시작되는 쇼핑대로(大路)와 바로 이어져 있고, 지하철·버스·케이블카에다 '뮤니(Muni)'라 불리는 샌프란시스코의 도심 순환 버스 등 총 30개 노선이 웨스트필드 부지를 관통한다.
◆완전히 뜯어고치되 전통은 보존
두 회사가 개축 공사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방문객들이 마치 원래부터 하나의 건물이었던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둘을 자연스럽게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원래 두 건물은 각각 9층(샌프란시스코 쇼핑센터)·8층(엠포리엄 빌딩)으로 층수도 달랐지만, 현재 지하 1층, 지상 5층인 내부를 보면 전혀 그런 사실을 알 수가 없다. 또 쇼핑센터 건물 출입구 5개 가운데 어느 방향에서 오든지 건물 중앙부와 두 군데 백화점 사이를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노선으로 설계했다.
신축에 가까울 만큼 기존 빌딩을 모조리 뜯어고쳤지만, 푸른 하늘이 보이도록 유리를 덮고 그 위에 이국적이고 독특한 문양으로 장식한 천장만은 그대로 살렸다.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엠포리엄 빌딩의 자랑거리를 훼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개축 공사를 하면서 과거 웨스트필드 쇼핑센터가 있던 자리에서도 엠포리엄의 천장 장식을 올려다볼 수 있게 만들어 전통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웨스트필드 샌프란시스코는 한 해 2000만명이 찾고, 백화점과 영화관·레스토랑 등 부대시설을 전부 제외하고 쇼핑센터 내 약 200개 브랜드 매장 수입만으로 한해 2억1300만달러(2300억원)를 벌어들이는 쇼핑 명소가 됐다.
부동산 종합개발회사 피데스 개발의 김승배 사장은 "개발을 하기 위해 꼭 새로운 부지를 찾다 보면 개발에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유연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기존에 있는 건물을 개발에 잘 활용하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