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 훈련소나 군부대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장병에게 뇌수막염이 종종 발생해 사망 사례가 발생하는 것은 그동안 군 의료계의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져 왔다. 뇌수막염 환자의 3분의 1 정도는 20세 전후 젊은 층에 생기며, 특히 군대나 대학교 기숙사와 같은 집단 거주지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이 때문에 미국은 군인들에게 '뇌수막균 백신'을 무상으로 접종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뇌수막균 백신이 아예 전무한 실정이다. 백신 접종을 하면 약 95%에서 예방효과가 있다.
◆군대에서 한해 10여명 발생
지난 2001~2002년 국군수도병원 군의관이었던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이상오 교수는 당시 군인들의 뇌수막균 감염 실태를 조사해 대한의학회지(2003년)에 발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한 해 육군에서 12명의 뇌수막균 감염 환자가 발생했다. 한 달에 한 명꼴로 군인 환자가 발생한 셈이다.
그중 2명은 뇌수막염 증세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지 24시간 이내 사망했다. 8명은 뇌수막균이 혈액을 통해 전신으로 퍼지는 패혈증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회복됐지만 절반은 뇌기능 이상, 피부 궤사 등 후유증이 남았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집단생활을 하는 군인들에게 뇌수막균 백신 접종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연구는 군대 내 뇌수막균 감염 실태를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논문이다.
일반적인 고열 증세 초기에 항생제를 쓰면 이 균이 혈액 검사 등에서 검출되지 않을 수 있어 실제 뇌수막균 감염 환자는 더 많을 것을 추산된다. 일반적으로 이 균에 의한 뇌수막염은 인구 10만명당 4~5명 발생한다. 뇌수막균 감염은 법정 전염병 3종으로 분류되며 환자를 확인한 병·의원은 7일 이내 보건당국에 전염병 발생 신고를 해야 한다.
◆미국은 모든 군인 백신 접종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와 예방접종위원회는 특히 뇌수막균 감염 취약 계층인 11~18세에는 백신 접종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또 군인과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 감염 유행지역인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 여행객에게도 백신을 권한다. 뇌수막균 유형은 10여 가지가 있으며 이 중 뇌수막염을 주로 일으키는 것은 A, B, C, Y, W135 등 4~5종이다. 이번에 논산훈련소에서 집단 발생을 일으킨 뇌수막균은 W135형이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이 백신을 상용화해 시판하고 있지만 국내에는 전혀 들어와 있지 않다. 이 백신을 판매하는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는 "한국 정부에서 수입을 요청한 제의가 없었고, 아직 시장성도 없다고 판단해 국내에 들여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백신 접종 비용은 약 5만원이다. 성인은 1회 접종으로 끝나며 접종 열흘 후 면역력을 갖는다.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군대를 의무적으로 가는 상황에서 장병 건강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며 "우리나라 경제 수준으로 봤을 때 군인에게는 국가가 백신 접종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