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달 5월, 결혼식을 준비 중인 예비신부 박모(31)씨는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혼수용품을 찾던 중 쇼핑몰 사이트에 링크된 결혼주례업체를 알게 됐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교수·CEO·재단이사장 출신 등 화려한 이력을 갖춘 주례자들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주례를 부탁할 은사(恩師)나 직장상사를 찾지 못해 고민 중이던 박씨는 예비신랑과 의논해 결국 인터넷 쇼핑으로 다른 혼수품과 함께 주례자도 '구매'했다.

가족과 친지들이 축하해주는 가운데 청춘남녀가 부부관계를 맺었음을 서약·공표하는 결혼식. 이 의식을 주관하는 주례자를 결혼주례업체를 통해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예비신랑·신부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이력과 외모를 갖춘 주례자를 선택할 수 있고, 원하는 주례사를 요청할 수도 있다.

인터넷 업체를 통해 주례자를 구한 신혼부부들은 이 같은 편리성과 10만원 정도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업체주례'의 장점으로 꼽았다. 인터넷 예비부부 카페에는 신혼부부들의 '사용 후기'가 잔뜩 올라와 있다. 한 예비신부는 "괜히 지인에게 부탁했다가 양복 한 벌 해야 하고 '신행(신혼여행)' 갔다 와서 선물도 사다 드려야 해 번거롭다"며 업체주례 선택 이유를 밝혔다. 다른 예비신랑은 "지인께 주례를 부탁하면 주례 부탁할 때, 신행 다녀와서, 결혼사진 들고 총 3번은 찾아가야 하는데 10만원으로 싸게 해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인터넷 예비부부 카페를 통해 주례자를 공동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예식장이나 인터넷 카페를 통해 비슷한 시기에 결혼식을 올리는 예비부부들이 함께 업체를 구해 좀 더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주례를 짧게 또는 재밌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 맞춤형 주례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예비부부들이 주례업체를 찾게 되는 이유다. 이달 초 결혼식을 올린 김모(30)씨는 "어차피 뻔한 주례사를 하객들은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짧게 해달라고 주문할 수 있는 업체주례가 편하다"고 했다. 주례업체인 결혼주례협회의 이상덕 회장(64)은 "요즘 신랑·신부들은 간결하고, 재미있고, 유익한 것을 원하고 동시에 업체주례에 의뢰했다는 사실이 노출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주례사를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체주례를 통해 예식을 진행했다가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을 망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회사원 이영민(30)씨는 동창의 결혼식에 갔다가 주례자를 보고 겨우 웃음을 참았다. 결혼식 주례를, 2주 전 결혼한 다른 동창의 주례자가 보고 있었던 것. 이씨는 "심지어 내용까지 비슷해 신랑이 무척 속상해했다"고 말했다. 처음 만난 의뢰인의 결혼식 주례를 하다 보니 주례자가 신랑·신부의 이름을 엉뚱하게 소개해 망신을 당한 경우도 발생한다.

업체주례 주례자가 웃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인터넷 카페에 피해사례를 올린 한 예비부부는 "8만원에 업체를 통해 주례자를 구했지만 예식장에 나타난 주례자는 '특별한 주례를 준비했으니 30만원은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고 했다. 신부는 "신랑이 결혼식 날 어른들 앞에서 주례자와 다툴 수 없어 20만원을 줬지만 주례사는 우리와 무관한 내용이었고 심지어 주례자 자신의 책을 홍보하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주례자와 함께 촬영한 결혼식 사진을 보면 화가 나 사진을 찢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주례자가 자신의 학력이나 경력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 최대열 전국주례연합회장(71)은 "대학 행정직 직원으로 퇴임했는데 전직 대학교수라고 사칭하는 등 경력을 뻥튀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인터넷 주례업체들이 난립하면서 전문성과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주례자로 나서는 일이 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최근 2~3년 새 새롭게 생겨난 인터넷 주례업체만 100여곳이 넘는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문조 교수는 "주례는 신랑·신부에게 결혼생활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의식인데, 주례자를 구하는 것까지 번거로운 일로 치부된다는 것은 결혼예식이 상품화된 극단적 사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