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엑스포를 기념하기 위해 건축물 하나가 지어졌다. '해비타트 67'이란 이름의 건물로 조립식 콘크리트 박스 350여개를 엇갈리게 쌓아올린 독특한 구조의 아파트였다. 훗날 이 작품은 아파트 디자인의 획을 그은 명작(名作)으로 평가받게 된다.

이게 아파트? 모셰 사프디가 1967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엑스포의 주제관 겸 귀빈 숙박시설로 설계한‘해비타트 67’. 상자형 콘크리트 박스를 엇갈리게 쌓아만든 159가구가 살 수 있는 아파트이다. 아랫집 박스 윗면이 윗집의 정원이 되는 식으로 아파트지만 모든 집에 정원이 딸려 있다.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봐도 획기적인 디자인이다.

이 아파트를 지은 건축가는 40여년이 흘러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싱가포르에 카지노까지 들어 있는 대규모 복합 문화단지를 짓는다. 연면적 30만2171㎡, 서울 여의도 63빌딩 두 개를 합한 것만한 규모의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싱가포르는 이 건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달게 됐다는 평을 듣는다.

20세기 도시의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시한 해비타트 67과 21세기 도시의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 메가 스케일(초대형) 건축물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캐나다 출신의 모셰 사프디(Safdie·73)씨는 이 두 역사적인 건축물을 설계했다. 최근 쌍용건설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미국에서 연극배우로 활동 중인 한국인 며느리가 꼭 한 번 한국에 가보라 했는데 이제야 왔다"는 그에게 한국의 아파트와 대형 건축물이 나아갈 길을 물어봤다.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만 난 모셰 사프디(왼쪽 사진),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들 입(入)자 형태 건물 위에 배 모양의 거대한 스카이 파크가 얹혀 있다.

―'해비타트 67'이 2009년 캐나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설계할 때 어떤 의미를 담았나.

"이스라엘에서 16세에 캐나다로 건너왔다. 지중해의 온화한 능선을 보고 자란 내 눈에 성냥갑 같은 캐나다 건물은 지극히 삭막해 보였다. 스프롤현상(도심 팽창으로 교외 지역이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현상)이 심해 아파트에 대한 재고(再考)가 필요한 시점에 엑스포가 열렸다. 모든 세대에 정원과 발코니가 딸려 하나로서 완결된 집을 만들고 싶었다. 비용을 줄이면서 그걸 실현하자니 박스형 조립식 구조물을 쌓는 방식을 고안하게 됐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시도로 화제가 됐다.

"25세 애송이(설계는 63년)에게 동화 같은 일이 펼쳐졌다(웃음). 다행스러운 건 지금도 사람들이 이 아파트에 살고 싶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는 사실이다. 나도 박스 4개로 된 집 하나를 소유했는데 박물관으로 만들어 일반인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해비타트 67' 건설 당시 크레인으로 콘크리트 박스를 쌓아 올리는 모습.

―세계 대도시 대부분이 아파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문제는 모두 '수직구조'에만 신경을 쓴다는 거다. '정원'을 만들어 숨통을 틔워야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중국 진황도에 짓고 있는 아파트는 계단식의 삼각 형태로 지었다. 3분의 1은 야외 발코니, 3분의 1은 개인 정원, 3분의 1은 공공 정원식으로 했다."

―한국의 아파트는 어떤가.

"한강변에 늘어선 아파트를 봤더니 똑같이 생긴 동(棟)이 수십개씩 나란히 있더라. 층을 달리하면 시각적으로 여유 있고 건물 간격이 멀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정원을 만들 공간도 많아진다. 싱가포르 정부의 뉴타운 프로젝트엔 40층 아파트와 4층짜리 아파트가 공존한다. 싱가포르 당국에서 나와 용적률을 정말 제대로 지킨 건지 이틀 동안 확인했다."

―초기엔 휴머니즘적인 건물을 지었다. 그런데 마리나베이샌즈호텔은 너무 웅장한 느낌이 든다.

"그 건물이 웅장하다니 의외다. 건물 사이에 유리 아트리움(대공간)을 만들어 자연 채광을 많이 하고 나무를 군데군데 심어 삭막한 느낌을 없앴다. 꼭대기의 루프 가든 뿐만 아니라 5층에도 정원을 만들었다."

―피사의 사탑보다 더 기울어져 있고(최고 52도 경사) 건물 꼭대기에 길이 343m의 스카이파크가 올려져 있다. 시공하기 어렵게 설계한 것 아닌가.

"쌍용건설이 포스트 텐션(와이어를 설치해 기울어짐을 방지하는 방식) 공법을 적용해 27개월의 짧은 공사 기간 안에 지을 수 있었다. 오픈식 때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을 만나 감사하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고밀도 초대형 건물을 짓는 게 붐이다. 폐해는 없을까.

"건물의 질은 규모와는 상관이 없다고 본다. 싱가포르는 민·관 협력 프로젝트의 경우 '투 엔벨롭 시스템(two envelop system)'을 거친다. 입찰 참가자가 디자인안(案)과 입찰가 서류를 따로 내는 방식이다. 일단 디자인이 가장 우수한 걸 선택한 다음 가격을 본다. '퀄리티 퍼스트(품질 제일주의)'를 지향해 랜드마크를 짓겠다는 것이다. 카지노를 한 번도 디자인한 적 없는 내가 선뜻 카지노가 있는 대형 건물을 맡게 된 건 싱가포르 정부가 랜드마크를 짓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