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정명화(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미국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 지휘자 정명훈(서울시향 예술감독)의 모친 이원숙(93) 여사가 15일 밤 11시 47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 여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인 ‘정 트리오’를 길러낸 스승이자, 이들의 정신적 기둥이었다.

이 여사는 자녀가 스스로 행복해하는 것을 찾아주고 끊임없이 ‘칭찬’해주는 교육방식을 택했다. 첼리스트 정명화씨는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며 “어머니의 칭찬이 음악을 하는 데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밝혔다.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싶다는 정경화씨의 투정에 “그래. 지금 당장 바이올린을 그만두자. 우리가 소원했던 대로 한국인의 재능을 세계에 알리고 떨칠 수 있었으니 이제 이만하면 됐다”고 말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정경화씨는 “그 말을 듣고 다시는 그만두겠다는 소리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면서 “어머니는 아이들의 마음을 꿰뚫어 움직이게 하는 남다른 재주가 있으셨다”고 말했다.

1918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인 이 여사는 정 트리오 외에도 4남매를 합쳐 모두 7남매를 키워냈다.

이화여전 가사과를 수석졸업을 했던 이 여사는 일본에서 유학하다 귀국해 정준채씨와 결혼했다. 자녀의 음악적 재능을 이끌어낸 '멘토'였지만, 시장에서 장국밥을 팔아 교육비를 마련한 억척스런 어머니이기도 했다. 1962년 이 여사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한식당 '코리아 하우스'를 7년 동안 운영했다.

이 여사는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받은 1달러의 팁을 차곡차곡 모아 아들 정명훈씨에게 그랜드피아노를 사줬다. 워싱턴 음악당을 빌려 첫 독주회도 꾸며줬고, 지휘에 관심을 둔 정명훈씨를 위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까지 가는 비행기 티켓을 마련하기도 했다. 정명훈씨는 "어머니는 모든 준비를 다 해놓고 우리의 결정만을 기다리셨다"고 했다.

1980년 간경화로 남편 정중채씨가 별세하자, 이 여사는 67세인 1984년 벨리포지 신학대학 뉴욕분교에 등록,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1990년에는 국내에 세화음악 장학재단을 설립했고,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까지 수상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고인은 새싹회 어머니상(1971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1990년), 자랑스러운 이화인상(1995년) 등을 받았다. 자녀 예술교육 지침서로 꼽히는 ‘통큰 부모가 아이를 크게 키운다’와 ‘너의 꿈을 펼쳐라’ 등의 저서를 남겼다.

이 여사의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8일 오전 11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