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밤 전북 익산의 한 주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손님 이모(44)씨가 우연히 합석한 손님 임모(52)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수십 차례 때려 살해했다. 소주 4병을 마신 이씨는 만취 상태였다. 경찰 조사에서 이씨는 "임씨의 통화 내용이 기분 나빴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3월 충북 청주의 한 술집 앞에서 발생한 '묻지마 폭행'도 술 때문이었다. 소주 5병을 마신 고모(38)씨가 길을 지나던 김모(36)씨를 주먹과 발로 폭행하고 칼로 목을 찔러 중상을 입혔다. 경찰은 "고씨가 술을 깬 뒤에도 범행을 기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취중(醉中) 범죄의 전형적 사례들이다. 술에 취해 아무런 이유 없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주먹이나 흉기를 휘두르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는 범죄들이 갈수록 심각해져 가고 있다.
12일 경찰청이 한나라당 조해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5년간 발생한 살인·강도·강간·방화·폭력·공무집행방해 등 강력 범죄 가운데 술을 마신 사람에 의한 범죄비율이 평균 36.7%로 나타났다.
범죄별로 보면 살인사건 6643건 중 2453건(36.9%)이 술 취한 상태에서 일어났다. 강도는 3만962건 중 4185건(13.5%), 강간은 5만2138건 중 1만7851건(34.2%)이었다. 방화는 7880건 중 3535건(44.9%), 폭력은 177만9334건 중 79만150건(44.4%)이나 됐다. 특히 공무집행방해는 8만8553건 중 5만1782건(58.5%)으로 절반을 넘었다.
술에 취해 아들을 죽이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 3월 부산 기장군의 김모(67)씨는 지체 장애를 가진 아들(40)과 저녁 식사를 하다 아들을 칼로 찔러 죽였다. 김씨는 삼겹살을 안주로 1.5L짜리 소주 1병을 마신 상태였다.
남자가 여탕에 들어가 난동을 부리는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 지난달 2일 충북 영동에서는 김모(52)씨가 술에 취해 여자 목욕탕에 들어가 행패를 부리다 경찰에 붙잡혔다.
체중 65㎏의 성인 남성이 소주 6~7잔을 마시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0.1% 상태가 된다. 말이 많아지고 긴장감이 풀어지는 단계다. 두세 잔 더 마셔 0.1~0.15% 상태가 되면 이성적 행동 조절 능력이 해제된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장기훈 선임연구원은 "이때부터 폭력성과 가학성이 극대화된다"고 말했다.
경기대 이수정 교수(범죄심리학)는 "술을 마시면 모든 게 용서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라며 "'술 먹고 하면 좀 괜찮겠지'하는 생각이 결국 큰 범죄를 부르는 수가 있다"고 말했다.
재판 과정에서 '주취(酒醉·술에 취한 상태)'를 형벌 감경 사유로 적용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09년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 대해 '심신미약에 이른 주취 상태'(술에 취해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할 정도의 상태)를 제외하고는 주취 감경을 없앴지만 아직도 다른 범죄에 대해서는 여전히 주취 감경이 인정되고 있다. 조해진 의원은 "음주로 인한 경범죄는 벌금을 상향 조정해 취중 범죄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입력 2011.05.13. 03:01
100자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