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사랑합니다

#1. 올해 고3 수험생이 된 윤모(19)군은 학업 때문에 아버지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눈지 오래됐다.

윤군은 학교가 끝난 뒤 새벽 1~2시까지 학원과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느라 불꺼진 집으로 들어오면 부모님은 이미 주무시고 계신다.

그는 가끔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며 고민을 털어놓던 시절이 그립다. 윤군은 가족과의 대화 대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인터넷 게임을 매일 30분씩 하고 잔다.

#2. 경기 수지에 사는 김모(15)양은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하루에 15분도 되지 않는다. 어느날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던 김양은 "오랜 만에 딸의 얼굴좀 보자"며 방에 들어온 아버지에게 "나가라"고 소리지르며 화를 냈다.

김양은 머쓱해하며 나가는 아버지를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와 마주보고 대화하는게 어색하고 고민이 있으면 부모님 보다는 친구에게 털어놓게 됐다.

김양은 최근에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주지 않고 공부만 강요하는 엄마와 크게 다투고 말을 하지 않고 있다.

8일은 어버이의 날이지만 부모들은 자식과 대화가 단절된 상황을 더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자녀와 아내의 대화에 끼질 못하고 홀대 당하는 가정 내 '왕따' 아버지들도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조사한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버지 3명 가운데 1명은 '자녀와 대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녀와의 대화 부족'을 하소연한 엄마는 19.8%인 데 비해 아버지는 34.4%에 달했다.

자녀쪽은 더 심해 '어머니와 대화가 부족하다'는 11.7%인 반면 '아버지와 그렇다'는 세 배 가까운 33.5%에 달했다.

학년별로는 중학생(20%)이나 대학생(21.5%)보다 고등학생(26.8%)이 '아버지와의 대화가 부족하다'가 답해 학년이 올라갈수록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가족과 함께한 여가활동은 TV시청(자녀 54.6%· 부모 58.6%)이 1위를 차지해 가족간 대화부족의 원인으로 꼽혔다. 정작 가족들은 여행(28.7%), 문화예술 관람(14.9%), 취미 오락활동(14.3)를 원하고 있었다.

김기헌 청소년정책분석평가센터 소장은 부모와 자녀간 대화단절 이유에 대해 "입시위주의 진학 경쟁 때문에 자녀들이 학원에서 밤 11~12시까지 공부하느라 부모와 물리적인 접족시간이 줄고 생계를 위한 맞벌이 가정이나 주말부부가 늘어나 자녀들과 함께 할 물리적인 시간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또 "여가방식이 가족과 대화를 하거나 함께 즐길수 있는 방식 보다 청소년들은 인터넷 게임이나 TV시청 등 개별적으로 하는 여가를 즐긴다"면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부모와의 대화가 줄어들고 공부를 가장 많이하는 고등학교 때 대화가 가장 줄었다"고 덧붙였다.

부모와 자녀간 대화시간 확보와 소통을 위해서는 선진국과 같이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체계적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서는 자녀 양육과 교육에 부모가 적절히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정부에서 예산을 지원한다. 각종 학부모 모임이나 프로그램도 한국과 달리 퇴근 후 저녁시간에 이뤄진다.

또 자녀와의 대화, 자녀의 학습 준비도 높이기, 아버지와의 운동 등 토요일에 부모와 함께할 수 있는'새러데이 스쿨(Saturday School)' 등 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활발하다.

호주 정부는 자녀의 연령별로 부모역할을 안내한다. 지역사회와 가족 서비스, 부모를 위한 재정적·물적 지원서비스 등 통합적 가족 지원정책도 제공하고 있다.

김 소장은 "한국에서는 부모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활성화 돼 있지 않아 부모들이 학교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면서 "우리나라는 학부모 모임이 낮에 일과시간에 많아 학부모들이 자연스럽게 배제되는데 저녁시간에 모임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에서는 부모 대상 프로그램이 많은데 이런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직장에서도 휴일이나 늦은시간까지 아버지들을 붙잡아두지 않고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