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종 때 남사고(南師古)라는 예언가가 있었다. 그는 "사직동에 왕기(王氣)가 있다"며 선조의 즉위를 예언했다. 임진왜란도 정확하게 점쳤다. "머지않아 왜란이 있을 텐데 사년(巳年)에 일어나면 나라가 망할 것이고 진년(辰年)에 일어나면 그래도 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작 과거는 여러 차례 보면서도 번번이 떨어졌다.

▶그의 예언 적중력과 명성을 시기한 친구가 사헌부에 투서를 했다. 남사고가 자기 운명도 알지 못하는 걸 보면 예언이 근거 없을뿐더러 맞는다 해도 우연에 불과하니 벌해야 한다고 썼다. 남사고는 이미 누군가 자기를 모함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뒤라 무사히 풀려났다. 사헌부 관리가 어떻게 모함이 있을 걸 알았느냐고 묻자 남사고는 말했다. "그것은 주역에 따른 예언이 아니었습니다. 조선 사람 십 중 구는 남 때문에 자기가 못되고 있는 줄 알고 있기에 자명한 이치옵니다."

▶투서(投書)는 남을 헐뜯거나 끌어내리기 위해 익명으로 그의 잘못이나 약점을 고발하는 글을 가리킨다. 조선 태조 때 "투서를 한 자는 교수형에 처하고 투서자를 체포한 자는 은 열 냥을 준다"고 한 걸 보면 우리 사회에서 투서의 역사는 오래되고 폐해도 심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투서가 끊이지 않자 숙종 때는 투서를 보고도 불태우지 않는 자를 귀양보내는 형벌을 추가했다.

중국 사상가 묵자(墨子)도 이미 2500년 전 "무고와 모함이 있는 세상에 살기보다는 도둑이 들끓는 세상이 낫다"고 했다. 2007년 우리나라에서 무고죄로 기소된 사람은 2171명이었던 데 비해 일본에선 10명이었다. 일본 인구가 우리보다 2.5배 많은 걸 감안하면 무고죄인은 우리가 440배 많은 것이다. 우리 관가와 군(軍) 인사를 앞두고 투서가 난무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투서 열 개 가운데 아홉 개 이상이 거짓이거나 근거없는 것들이라고 한다.

▶육군 장성 진급을 둘러싸고 헌병대에서 비리 투서전(戰)이 벌어져 군이 뒤숭숭하다고 한다. 군 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헌병대에서 일어난 일이라 더 한심하다. 왜 당당하게 자기 이름을 걸고 고발하지 못하는가. 더 철저히 수사해 투서를 한 쪽이든 비리 의혹을 받는 쪽이든 잘못을 가려 엄벌해야 한다. 투서에 요동치는 조직은 건강한 조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