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일 동남권 신공항의 사실상 백지화 방침을 발표키로 한 상황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입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력한 차기주자인 박 전 대표는 특히 영남권에서 단단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영남의 여론이 크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신공항을 둘러싼 대구·경북과 부산·경남 간 지역갈등의 확전 또는 종전 여부의 키를 박 전 대표가 쥐고 있는 셈이다.
◆박 전 대표 31일쯤 입장 발표
동남권 신공항 문제에 말을 아끼던 박 전 대표는 29일 "정부에서 30일 결과를 발표하면 입장을 밝힐 생각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강릉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당 평창동계올림픽 유치특위 회의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였다.
박 전 대표는 "신공항 백지화로 결론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아직 정식적으로 (발표가) 난 게 아니지 않으냐. 발표 나면 하겠다"고 했다. 박 전 대표는 정부 발표 다음날인 31일 대구 방문 때 입장을 표명할 가능성이 크다.
박 전 대표는 작년 7월 대구에서 특정 지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영남권 5개 시·도가 함께 이용할 수 있고 대구의 국가산업단지가 성공할 수 있는 위치에 국제공항이 들어서야 한다"고 말했었다. 동남권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그런 만큼 만일 박 전 대표가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식으로 정부의 '백지화' 발표를 반박하게 된다면 세종시 논란 때 빚어졌던 이명박 대통령과의 갈등 관계가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이 대통령의 지난 대선공약집엔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담겨 있었다.
◆박 전 대표도 쉽지 않은 선택
박 전 대표가 자신의 '텃밭'인 영남권의 들끓는 여론과 이 대통령과의 관계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영남권에선 일반 시민들까지도 신공항 백지화에 반발하는 상황인 만큼 박 전 대표가 이를 외면하기 힘들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영남권 의원들은 연일 "백지화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영남권 친박(親朴) 의원들 사이에선 박 전 대표가 동남권 신공항을 대선 공약으로 재추진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친박 핵심인 최경환 의원은 "한나라당 정권 기반이 붕괴되고 있는 만큼 신공항이 백지화된다면 다시 추진해야 한다. 박 전 대표도 신공항의 필요성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박 전 대표 비서실장 출신인 유승민 의원도 "박 전 대표도 이를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영남권 친박들은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최대 거점인 '영남'을 포기할 수 없는 만큼 '신공항 재추진'을 주장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럴 경우 '백지화' 결론을 내린 이 대통령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특히 작년 8월 두 사람의 회동 이후 지속되고 있는 '화해·협력' 기류가 깨지게 될 수도 있다.
반면 박 전 대표가 정부의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방침에 브레이크를 강하게 걸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공항 후보지인 밀양이나 가덕도의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전문가의 입장을 국익 차원에서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할 가능성도 있다. 비(非)영남권 친박 의원들은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은 유감'이라는 식의 지적은 할 수 있겠지만 '신공항 재추진'까지는 꺼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신공항 얘기가 처음 나오게 된 계기가 지역발전 문제 때문인 만큼 정부가 다른 식의 지역발전 안(案)을 대신 내놓지 않겠느냐. 박 전 대표가 단지 표를 의식해 신공항 재추진을 언급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어떤 입장을 밝힐지에 대해서는 이처럼 의견이 분분하다. 한 친박 의원은 "박 전 대표가 '텃밭'과 이 대통령 사이, 그리고 지역 이익과 국익(國益) 사이에서 어떻게 입장을 정리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친박 의원은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해서 영남권을 쪼개지게 한 당사자는 따로 있는데 그 뒷감당을 박 전 대표가 해야 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