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전 대전광역시 중구 제빵업체 '성심당' 앞. 임영진(57) 대표가 여러 가지 빵을 60개씩 넣은 상자 2개를 두 팔 가득 안고 나왔다.
"어르신들이 여기 빵 맛을 잊지들 못하세요. 잘 먹겠습니다." 대전노인요양원에서 온 사회복지사 김대현(49)씨가 고맙다고 하자 임 대표는 "더 못 드려 죄송하다"고 했다.
성심당은 1956년 설립 이후 55년째 당일 팔리지 않은 빵들을 모아 다음날 아침에 기부하고 있다. 아동센터나 외국인노동자센터 같은 복지단체 150여 곳이 대상이다. 이 전통은 3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임천규씨의 뒤를 이어 임 대표가 2대째 이어가고 있다.
임씨의 아버지는 평안도 함주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다가 1951년 1·4후퇴 때 구사일생으로 남한으로 넘어왔다. 당시 그는 '살아서 남으로만 갈 수 있다면 반드시 가난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월남 후 대전역 앞에 3평(약 10㎡)짜리 허름한 찐빵가게를 차렸다. 찐빵 300개를 만들면 100개는 전쟁통에 버려진 고아나 노숙자들에게 나눠줬다.
제빵업체들은 그날 팔리지 않아 남은 빵을 다음 날 절반 정도 값에 파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성심당은 남는 빵은 단 하나도 팔지 않는다. 임 대표는 "매일 빵을 6000개 정도 만드는데, 보통 400~500개를 나눠주게 된다"고 했다. 남는 빵은 1000원짜리 모닝빵부터 2만~3만원짜리 케이크까지 400가지에 달한다. 값으로 친다면 한 달 평균 1000만원어치는 된다. 때로 복지단체들이 급하게 빵을 요청해오면 아예 새로 구워서 기부하기도 한다.
성심당은 간식비를 마련하기 힘든 40개 영세 복지단체에는 매달 서너 차례씩, 형편이 좀 나은 110개 단체에는 두 달에 한두 차례씩 빵을 전달한다. 임 대표는 "직원들 사이에선 '우리도 남는 빵은 팔아 이윤을 더 남기자'는 말도 나오지만 돈을 얼마 더 버는 것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6년 전부터 매주 성심당 빵을 받아 노숙자들에게 나눠주는 예수수도회 오영자(61) 수녀는 "욕도 심하고 거칠기만 하던 노숙자들이 빵 하나를 건네는 온정에 상담에 응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성심당의 빵 기부는 3대째로 이어질 것 같다. 임 대표로부터 업체를 물려받을 예정인 아들 대환(25)씨는 "소중한 전통인 만큼 계속 실천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