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산 같은 물이 들이닥쳤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내가 가장 아끼던 장난감, 카드랑 용인형이 모두 사라졌어요."

여섯 살 오카 스즈노스케는 쓰나미가 덮치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일본 미야기현 오나가와초의 작은 마을. 소년의 가족이 언덕 위로 대피하자마자 10m 높이의 해일이 마을을 휩쓸었고 아이는 두려움에 떨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스즈노스케는 대피소에 온 후에도 "무섭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 이후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지진과 쓰나미 현장을 직접 목격하거나 TV를 통해 접한 일본 어린이들은 작은 일에도 쉽게 놀라는 불안증세와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현지에서 구호 작업을 벌이는 단체들이 전했다. 스즈노스케를 만난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약 10만명"이라며 "이들이 '언제 또 무슨 일이 나는 것 아니냐'며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 내 모자가 여기 있었네… 18일 일본 이와테현 오후나토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대지진 일주일 만에 학교에 처음 돌아온 여자 어린이가 운동장에서 발견한 자신의 흙 묻은 모자를 집어들고 있다.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의 적십자 병원에는 부모 손을 잡은 어린이 환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대피소에서 생활하면서 며칠째 잠을 못 이루고 밥을 먹지 못하며 구토 증세까지 보이는 아이들이 많다.

심한 충격을 받은 아이들이 그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더라도 꾸준히 관찰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무서웠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싫은 나머지 기억을 은폐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소영 학술이사는 "그럴 경우 아이들 마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치료는커녕 오히려 속으로 병이 곪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17일 현재 일본 문부과학성이 공식 집계한 18세 미만 사망자 수는 26명. 부상자는 129명에 달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외상보다 심각한 것은 아이들이 난생처음 겪은 정신적 충격과 공포"라며 "빨리 상담을 받지 않는다면 성년이 되고서도 행동장애·정신장애 등의 부작용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피소 감염' 등 2차 피해도 심각해지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18일 미야기, 후쿠시마, 이와테현 등 2000여곳에 달하는 피난소에 인플루엔자 감염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테현 가마이시시(市)의 피난소에서는 지난 15일 어린이 1명이 첫 인플루엔자 감염 환자로 분류된 이후 10여명의 피난민이 위장염을 호소해 격리 조치됐다. 열악한 환경은 면역력이 낮은 어린이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대피소 독감 확산은 급성 폐렴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 2차 사망자 확대에 대한 우려를 높이고 있다. 1995년 한신대지진 때도 피난소에 독감이 유행해 약 600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계속되는 여진으로 인한 후유증도 심각하다. 아사히신문은 18일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진동을 느끼는 '지진취기(地震醉氣)'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잦은 여진으로 인해 시각정보와 평형감각이 엇갈려 어지러움과 구토를 유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 일주일간 여진은 247회 발생했고 이 중 규모 7.0 이상인 지진도 세 차례에 달했다.

3월은 일본의 졸업시즌이지만 피해가 너무 커서 졸업식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학교가 속출해 동심을 멍들게 하고 있다.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에 있는 오카와(大川) 초등학교는 108명의 학생 가운데 84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이 학교 가시와바 교장은 "졸업이라는 의미라도 전해주고 싶은데 식을 치르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월드비전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재난에 정신적 충격을 입은 일본 아동을 위해 쉼터를 설치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재난을 대비한 안전교육도 실시하고 또래 친구들과 함께 치료사를 만나 안정을 되찾게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