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의 한 문학 동아리는 8년째 신입 회원을 받지 못했다. 학생회관에 있는 약 26㎡(8평) 크기의 동아리방(이하 동방)엔 먼지가 뽀얗게 앉은 책장과 테이블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벽에는 동아리 활동에 대한 공지 대신 배달 음식점 스티커들만 어지럽게 붙어 있다. 지난 8년간 문예집을 발간하거나 문예행사를 개최한 적도 없다. 학교에서 매학기 지급하는 동아리 활동 지원금이 들어오는 날은 이들의 회식 날이다.
서강대의 한 음악 감상 동방에서는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들은 1년에 한 차례도 음악 감상을 하지 않고, 동방은 몇몇 학생들의 '사랑방'으로 쓰이고 있다. 성균관대의 D동아리의 관계자는 "우리도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동아리인지 모른다"고 했다. 오랫동안 활동이 없다보니 어떤 활동을 하는지 설명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들은 매년 '유령' 회원들을 신입 회원 명부에 올려 동아리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보고를 한다.
활동도 신입 회원도 없는 '식물'동아리가 학생회관에서 동방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지만 지원금과 동방은 포기 못하는 것이다. 한 동아리의 회장을 맡고 있는 대학생 김모(28)씨는 "일부 '식물'동아리 회원들이 자신들의 휴식공간을 포기하기 싫어 허위로 활동 보고를 하고 심지어 활동비를 타 술값으로 탕진한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식물'동아리들의 버티기 탓에 신생 동아리가 공간을 배정받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는 데 있다. 서울대 온라인 게시판에는 '식물'동아리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 올라왔다.
한 익명의 게시자는 "기준에 미달되는 동아리들은 좀 칼같이 내보내라"고 요구했다. 연세대 밴드 동아리 '메두사'는 매년 정기 공연을 열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들의 연습 공간은 캠퍼스 어디에도 없다. 회장 강명수(20)씨는 "악기를 보관할 장소도 마땅치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성균관대의 사회적기업 동아리 'SEM'은 학교 근처 카페를 전전하며 세미나를 해야 한다. 회장 김재우(20)씨는 "동방 신청을 해도 2~3년은 걸리는 실정"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각 대학 동아리연합회는 '식물'동아리를 색출해 퇴출시키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연세대 동아리연합회 안자올(22)씨는 "1년에 네 차례 동아리 대표자 회의를 열어 동아리 재심사를 하지만 졸업생이나 존재하지 않는 '유령'학생을 명부에 올리는 등 허위 보고 사례가 많아 실태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