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을 읽던 중학생 시절이 있었다. 아직 '파리 바게뜨'나 '뚜레주르' 같은 대기업 프렌차이즈가 나오지 않았던 때였다. 동네 거의 모든 빵집 이름이 '독일빵집'이거나 '런던제과'이거나 혹은 '뉴욕빵집'이던 시절이었고, 생크림 케이크는 존재하지 않던, 레몬향 나던 버터크림 케이크의 시절이기도 했다. 나는 동네 입구에 있던 뉴욕빵집에서 오톨도톨 솟아오른 소보로를 야금야금 뜯어먹으며 사강의 소설을 아껴 읽었었다. 그저 도시나 나라 이름 하나만 붙여도 덜커덕 팥빵처럼 달콤한 빵집의 이름이 되었으니, 지금보다 살기 덜 팍팍하던 시절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열여섯,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같은 말랑말랑한 제목이, '슬픔이여, 안녕' 같은 감상적이고 나른한 감수성이 좋았었다. 잠이 많았으니 꿈도 많았고, 곰보빵이란 말 대신 굳이 소보로빵이라고 힘주어 말하던 때였다. 그때는 사강이 엘뤼아르나 보들레르의 시에서 자신의 작품 제목을 따왔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요즘 다시 프랑수아즈 사강을 읽는다. 열아홉 살에 '슬픔이여, 안녕'으로 등단한 이 문학천재를 잊고 지낸 지 거의 20년 만이다. 사강을 읽는 건 내 어린 시절을 들춰보는 일이라 오래되고 낡은 앨범을 보는 생경함이 들기도 했다. 앨범 끝은 삭아 있고, 세월은 흘러 있고, 나는 변해 있었다. 골루아즈 담배와 커피. 한 예술가 평생의 아침이었던 두 개의 명사가 말해주듯 '데까당'이란 단어가 가장 잘 어울렸던 사강 역시 수 년 전 생을 달리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사강의 네 번째 연애소설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폴'은 오래된 연인 로제와의 관계에 늘 긴장과 안정을 동시에 얻는다. 자유로운 영혼인 로제는 어디에도 구속받지 못하는 성격으로, 폴은 그에게 어느 날부터 다른 여자의 흔적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한다. 폴은 자신이 인테리어를 맡게 된 집의 아들인 스물다섯 시몽과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몽은 불안하고 고독한 폴의 눈빛과 시선에서 오히려 깊은 사랑을 느끼고 그녀에게 애정공세를 퍼붓기 시작한다.

프랑스 파리는 세계의 유행을 선도하는 현대적인 도시다. 그러나 소설‘브람스를 좋아하세요’속의 파리는 이 소설을 토대로 만든 영화‘이수’에서 그려진 것처럼 고전적인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폴, 로제, 시몽.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 기묘한 삼각관계는 꽤 전형적으로 느껴진다. 오래된 연인 사이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서 겪게 되는 고전적인 갈등상황들 말이다. 배경이 파리인 만큼 파리 시내의 모습이 세세히 묘사될 법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잿빛 보도, 행인들, 주위의 자동차들이 그녀에게는 문득 구체적인 시대에 속하지 않는, 양식화되고 고정된 배경처럼 여겨졌다. 그들은 2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같은 소설 속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 구체성을 배제한 시내, 교외, 숲, 음악홀이란 명사를 내세워 인물의 심리적 거리와 분위기, 간격들을 전할 뿐이다.

소설 속의 '파리'는 10대부터 생미셸 거리의 술집과 카페를 제집처럼 드나들고, 술과 도박, 쇼핑으로 인세를 탕진하던 작가 사강의 돌출적인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잉그리드 버그먼과 이브 몽탕, 앤서니 퍼킨스가 폴과 로제, 시몽으로 나오던 영화 '이수(離愁)'에서 그려지던 파리의 모습에 가깝다. 고전적인 얼굴의 잉그리드 버그먼과 파리를 상징하는 남자 이브 몽탕의 모습에서 그려지듯,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고전 영화 속의 파리의 모습은 소설에 전조처럼 깔려 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브람스를 좋아하는 연상녀와 연하남의 이야기라기보단 똑똑한 여자들은 왜 나쁜 남자에게 빠져드는가에 대한 연애학적 단상이다. 실제 브람스의 전기 작가는 프랑스인들에게 브람스를 좋아하게 만드는 건 거의 절망적인 일이라고 선언했는데, 이유야 어쨌든 브람스 교향곡의 미세한 선율 속에서 사랑의 진동을 느낀 폴의 선택이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다. 바람기 많은 로제냐 열정적인 시몽이냐를 두고, 로제를 택하는 폴의 심리에는 심리학에서 '인지부조화'라고 부르는 간극들이 존재한다. 열정적인 연인을 두고도 수년간 익숙했던 애인에게 들인 노력을 헛되게 만들 수 없다는 자기 보상심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사강은 그 후로도 수많은 소설과 희곡들을 썼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다른 형태의 연애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강이 실제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대답했던 말은 그녀가 그토록 많은 연애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의 틈새를 보여준다.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이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2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3년 이라고 해두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이 스물넷의 나이에 쓴 네 번째 장편. 파리를 배경으로 폴, 로제, 시몽의 삼각관계를 그렸다. 열네 살이나 연상이었던 클라라 슈만을 평생 연모했던 요하네스 브람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은 폴과 시몽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랑의 덧없음과 비애를 그리며, 아나톨 리트박 감독에 의해 'Goodbye, again'(한국 개봉 당시 제목은 이수'離愁')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