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쿠텐 김병현이 지난 3일 오키나와현 구메지마 구장에서 진행된 스프링캠프에서 불펜 피칭을 하고 있다. 구메지마(일본)=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오키나와 전훈캠프에서 '투수 강화법'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간단히 말하면, 투수가 기량을 올리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과연 투수는 어떻게 훈련해야하는가.

▶김병현 이틀간 200개 투구

'투수 강화법'을 취재하고 있던 중, 때마침 23일 라쿠텐 김병현이 논쟁이 될만한 훈련 스케줄을 보여줬다.

김병현은 22일 불펜피칭 100개를 한 뒤, 23일에도 '90개+α'를 던졌다. 사실 이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이틀 합계 200개 안팎의 공을 던진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만 뛰었던 김병현이 이틀간 100개라고?

▶MLB에선 상상도 못해

23일 김병현에게 "예전에도 이렇게 이틀 연속 100개씩 던진 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김병현은 "(이렇게 하면) 메이저리그에선 난리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 경우 대학때 이후 처음인 것 같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에선 투수들의 투구수를 철저히 관리한다. 개인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선발 투구수를 한경기 100개 남짓으로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불펜피칭 역시 실전과 비슷한 것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공식 훈련에서 이틀 연속 100개를 던진다는 건 메이저리그에선 '선수 혹사' 수준으로 거론될 것이다.

▶사사키의 용불용설

현재 오키나와의 LG 캠프에는 사사키 가즈히로 인스트럭터가 와있다. 일본과 미국을 평정했던 최상급 마무리투수 출신이다.

사사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투수는 웨이트트레이닝(이하 웨이트)에 너무 신경쓸 필요가 없다. 많이 던지는 게 중요하다. 불필요한 웨이트는 투수를 둔하게 만든다."

요점은 이거다. 투수가 특정 구질을 던질 때 팔의 특정 근육이 힘을 쓴다. 따라서 좋은 커브를 갖고 싶은 투수는 평상시 계속 커브를 던지는 훈련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웨이트를 열심히 한다 해서 커브에 필요한 근육이 강화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커브용 근육을 만든 뒤, 웨이트는 그후 주변 근육을 보완해주는 목적으로 해야 한다.

▶웨이트와 피칭

90년대 후반부터 국내프로야구에선 '투수도 웨이트를 많이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미국 야구의 영향이었다.

사사키는 이같은 믿음이 잘못됐다는 의견을 밝힌 것이다. '투수는 자꾸 던져야 그에 필요한 근육을 강화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한다. 전반적인 일본프로야구의 이론이다.

사사키는 "북미권 선수들은 타고난 신체조건이 좋다. 그들은 웨이트를 통해 몸을 만들고, 그냥 상체로만 던져도 좋은 공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동양인은 다르다. 힘을 최대한 쓸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하며, 동시에 반복된 피칭으로 그에 필요한 팔근육을 키워야한다"고 말했다.

▶타자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이론이 타자에도 적용된다. 타자들이 힘을 키우고자 웨이트에 매진하는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지나친 웨이트가 타자들의 기량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쪽 꽉 차는 스트라이크를 치려면, 훈련때 그런 코스의 공을 계속 쳐보며 접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 코스를 칠 수 있는 근육이 길러지고 몸이 기억하게 된다. 바벨 들며 근육 키우는 것도 좋지만, 그 보다는 하루 1000개씩 계속 배팅훈련을 하는 게 '몸의 기억'에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SK 김성근 감독이 바로 이같은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역시 '용불용설'를 중시한다. 오릭스 이승엽이 최근 3년간 고전했던 것도 웨이트로 불필요한 근육을 키웠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은 과도기

한국프로야구는 어떤 상태일까. 대부분 투수들에게 의사를 물어보는 편이다. 하루 불펜피칭 100개를 하면 적어도 하루 이틀은 쉬게 해주는 상황이다. 물론 자원하는 선수도 있다. 삼성의 카도쿠라는 최근 캠프에서 이틀 연속으로 합계 200개 가까운 공을 던졌다. 역시 일본인투수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병현은 삼성의 '웨이트 마니아'인 정현욱에게 "너무 세게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그는 취재진에겐 "편하게 던지려다 보니 상체로만 던지고, 그래서 본래 구위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체를 써서 힘있는 직구를 던졌던, 그때 팔근육이 어떻게 작동했는 지에 대한 '몸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김병현은 이틀 연속 100개씩 던지는 걸 택한 셈이다.

삼성 선동열 운영위원은 "투수는 자꾸 던져봐야 한다. 그래야 릴리스포인트를 찾고 구질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 그에 필요한 근육을 키울 수 있다. 우리도 훈련때 던지는 투구수를 점차 늘려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물론 정답이라는 건 없다. 선수마다 특성이 다르듯, 웨이트가 더 몸에 맞는 케이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 건너간 동양인투수들이 미국식 훈련을 따르다가 낭패를 본 사례가 많다는 건 분명 중요하다.

오키나와=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