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 웃장에서 식료품 도매업을 하는 '시온상회' 양성훈(74)씨는 지금도 나무주판을 사용한다. 양씨는 "이게 전자계산기보다 빠르다"고 자랑한다. 예전 두 자리 국번 번호가 적힌 정겨운 간판이며, 화랑 성냥, 노랑 고무줄이 여전히 가게 한켠을 지킨다. 예전 상인들이 천장에 다락방을 내어 살림을 꾸렸듯, 이 가게에도 다락이 있다. 손때가 잔뜩 묻은 나무 금고가 세월의 흐름을 말한다.

"무명 기저귀를 찬 어린 딸을 금고 위에 앉혀서 키웠지. 이게 우리를 먹여 살렸어."

웃장에 하나뿐인 통닭집 '웃장통닭.' 몇 년 사이 4~5개 통닭집이 모두 문을 닫고 이제 이곳만 명맥을 잇는다. 조상일(65)씨는 "36년간 닭을 튀기다 보니 불이 달궈진 가마솥 소리만 듣고도 닭을 언제 넣을지 안다"며 "어린이날, 운동회, 휴가철, 명절에 손님들이 여전히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중화요리점 '은혜각' 신홍근(64)씨는 자장면을 3000원에 판다. 하지만 학생에겐 그나마 1000원을 깎아준다.

"학생들이 뭔 돈이 있겠어. 양을 더 주고도 2000원만 받아. 그런데 배달이 힘들어 오는 손님만 받고 있어서 단골한테 미안해."

순천 웃장에는 정이 흐르는 상인들의 이야기가 서려 있다. 순천 동외동에 자리한 이 시장은 100년의 세월을 이어왔다. 일제 강점기인 1928년 8월 위생상 이유로 중앙시장에서 북문 밖으로 옮겨졌고, 그때부터 오늘날의 시장이 형성됐다.

이런 웃장의 역사와 상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순천 웃장 정류장'<사진>이 발간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순천시가 '순천웃장 문전성시 프로젝트' 일환으로 그 첫번째 이야기를 펴냈다. '남도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책을 엮었다. 이 프로젝트는 상업적으로 침체된 전통시장에 문화의 숨결을 불어 넣어 시장을 문화 체험의 공간으로 활성화하자는 취지의 사업.

지금의 모습은 1975년 상설시장 개장으로 형성됐다. 현재도 매월 5일, 10일마다 오일장이 열리며, 30개 점포에서 80여명의 상인들이 생필품과 어패류, 식료품 등을 판매한다.

1960년대 '평화상회'는 당시 파장을 알리는 가게였다고 한다. 간판에 비둘기가 그려져 있었는데, 날이 어두워져 그 새가 보이지 않으면 상인들이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가게 상인(80)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미국에서 밀가루도 가져오고, 새마을 사업도 시작해 보릿고개가 서서히 없어졌지. 잡화·생필품·고추전·나무장작·채소 등을 붉은 소쿠리에 담아 파는 상인들은 시가 발행하는 표딱지를 붙였어. 세금를 내라는 뜻이지. 밤낮없이 일하다 통행금지를 어겨 경찰서에 잡혀간 적도 숱해."

정류장(情流場)은 '정이 흐르는 웃장'이란 뜻. 책은 "잠시 머물다 홀연히 사라지는 듯 보이지만, 정류장을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문득, 시장은 정류장이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오늘도 삶의 터전을 사는 상인들의 소소한 이야기는 계속 흐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