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상하는 일은 아니지유?" 경기도 양평의 70대 농부 손씨가 물었다. 윗집에 사는 화가 안창홍(58)의 10여년간에 걸친 설득에 못 이겨 마침내 누드화 모델을 서기로 결심하면서다. "아니, 옷 벗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는데 몸 상할 일이 어디 있어요!" 안창홍은 일단 안심부터 시켰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작업실을 찾아온 손씨가 베드 카우치(침대 보조의자)에 앉아 옷을 벗기 시작했다. 햇볕에 그을린 목의 굵은 주름, 견고하고 당당한 어깨와 등판, 노동의 흔적인 팔 근육이 화가의 눈앞에 드러났다. 안창홍은 세피아 블랙의 아크릴 물감으로 늙은 농부의 육체를 세밀하게 그려나갔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안창홍의 전시 '불편한 진실'에는 손씨가 모델을 선 '베드 카우치 5'(2008) 외에도 잘 다듬어진 미끈한 몸과는 거리가 먼 누드가 40여점 등장한다. 축 처진 뱃살, 퉁퉁한 허벅지…. 공중목욕탕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낯익은 알몸들이 안창홍의 새뜻한 붓끝에서 일상과의 '거리'를 부여받아 낯설어졌다.
작품 '문신한 남자'(2010)에서는 군복 바지를 입은 30대 문신사가 푸른 문신을 새긴 상반신을 훌렁 벗어 보였다. 안창홍이 3개월간 설득한 끝에 옷을 벗은 이 사내는 이후 부인과 함께 전신 누드모델을 섰다. 제목은 '부부'(2010)다. 이 부부는 현재 초등학생인 두 아들과 함께 가족 누드모델을 서고 있는 중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이렇게 섭외됐다. '꿀벅지'와 '초콜릿 복근'이 난무하는 이 가공된 육체의 시대에 날것 그대로의 정직한 몸들을 거리낌 없이 화폭에 담은 안창홍은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내 주변의 보통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특별함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언제 벗어 줄거요?" 그의 집요함에 못 이겨 사람들이 하나, 둘 옷을 벗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일탈 욕구가 있잖아요. 제 설득이 그들의 호기심을 건드린 셈이죠. 근데 여자들보다 남자들 옷 벗기기가 더 힘들다는 거 아세요? 젊은 여성들에겐 '미술사에 길이 남을 명화를 그리겠다'라고 하면 설득이 되는데 남자들은 계면쩍어 해요."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했던 1980년대에 안창홍은 '민중 미술가'로 불렸었다. 그는 유령처럼 눈알이 없는 인물들을 그린 '가족사진' 연작으로 일제와 분단으로 훼손된 우리의 시대사를 표현했다. 이후 1990년대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산뜻한 일러스트식의 '입맞춤', 사진을 이용한 '봄날은 간다' 연작 등 보다 감각적인 작품들을 내놓았다. 외양만 보면 민중미술에서 발을 뺀 듯 보이지만 정작 그는 "여전히 내 관심사는 시대정신과 부조리"라고 말했다.
고졸(高卒) 안창홍은 화단에서 오랫동안 이단아 취급을 받아왔다. 그는 고교 시절 여름엔 막노동을, 겨울엔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려 내다 팔며 고학(苦學)을 했다. 고교 졸업 후엔 화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돈을 벌었다. "고독은 예술가의 천형(天刑)"이라 여겨왔다. "한 번도 제가 마이너리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화가는 좋은 그림만 그리면 되니까. 콤플렉스를 가질 이유가 없었어요. 저 스스로 굉장히 잘났다고 생각했거든요."
안창홍이 화집을 뒤져 고등학교 졸업반 때 그렸다는 자화상을 보여줬다. 앞머리로 한쪽 눈을 가리고, 다른 한쪽 눈으로 거울을 노려보고 있는 그림 속 소년의 머리 위에서 성화 속 성인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후광이 빛나고 있었다.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나 성인과 동일시해 그리는 것은 자의식이 특별히 강한 화가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건방졌죠.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거든요. 그래도 그 자존심이 상업주의가 판치는 이 미술계에서 저를 지켜줬어요. 금력에 아부하지 않는 저만의 그림을 그리겠다는 신념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항상 운이 좋은 편이었지만 운을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신념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신념을 통해 자기 인생의 문을 열어가는 거 아닌가요?" 전시는 다음 달 6일까지. (02) 3217-1093
불편한 누드 속 드러나는 그의 진실… 안창홍 전
도시의 폐허 앞에 선 '원시의 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