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5일 금옥여자고등학교(서울 신정동 소재) 멘토방. 여고생 아홉 명의 눈길이 화이트보드 앞에 선 친구에게 쏠렸다. 오늘의 발표자인 2학년 조윤진양이 사회문화 교과에 나오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라는 주제로 발표수업을 하고 있었다. 조양의 발표가 끝나자, 서로 자유롭게 질문하고 답하며 수업을 이어갔다.
학교 수업보다 더 깊이 있게 공부하려면 꼭 학원에 가야 할까? 친구들과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공부하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10배' 이상의 공부 효과를 올릴 수도 있다. 스터디그룹에서 공부하는 고교생들을 만나봤다.
◆친구 가르치고, 질문에 답하고… 더 깊게 공부하는 습관 생겨
금옥여고 2학년 최나경·김수연·손지원·김슬기·이아린·오예진 학생은 지난해 3월부터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활동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 1시간 30분씩 공부한다. 언어영역의 경우, 문제집 한 권을 정해 각자 문제를 풀어 오고, 모르는 부분은 서로 의논하며 풀이법을 찾는다. 단원별로 담당자를 정해두는데, 담당자는 다른 친구들이 모르는 부분을 설명할 수 있도록 더욱 정확하고 깊이 공부해 와야 한다. 김슬기양은 “시험 기간에는 각자 과목을 맡아 개념 정리를 해오고 함께 예상문제를 뽑아 공부하기 때문에 훨씬 효율적”이라고 스터디그룹의 장점을 소개했다. 김수연양은 “저는 언어영역 공부를 자꾸 뒤로 미루곤 했는데, 스터디그룹을 하면서 매일 공부하게 됐다. 특히 내가 맡은 과제를 하지 않으면 다른 친구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한다”고 덧붙였다.
같은 학교 2학년 조윤진·최단비·조은영·김영민 학생은 지난해 10월, 스터디그룹을 결성했다. 요즘은 3학년 때 배울 사회문화 과목을 예습하는 중이다. 조윤진양은 “아직 배우지 않은 과목이라 기본개념을 잘 다지려고 교과서로 공부한다. 각자 교과서를 읽어오고, 그날의 발표자가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설명하면서 모둠원을 이해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한 단원을 마치면 마인드맵을 그리면서 공부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한다. 김영민양은 “친구들을 가르치고 질문에 잘 답하려면, 무엇보다 내 자신이 공부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2중, 3중으로 공부하게 됐다”고 전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본인이 놓친 부분까지 배우면서 사고력 키워
숭문고등학교(서울 대흥동 소재) 1학년 백남수, 박승준·김동호·구창록·노용규 학생은 지난해 9월 무렵 스터디모임을 만들었다. 김동호군은 “지난해 국어 수업이 글 속에 나타난 인물의 행동이 의미하는 것 등을 분석하는 식으로 깊이 있게 진행돼 혼자서 공부하기가 버거웠다. 스터디그룹을 만들어서 필기를 공유하고, 교과서 내용을 분석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전했다. 저녁에는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아침에 다른 학생들보다 40분 일찍 등교해 함께 공부했다. 박승준군은 “교과서 공부가 끝나면 예상문제를 만들어 풀었다. 학교 시험이 끝나고 여유가 있을 때는 ‘허생전’의 주인공을 ‘변씨 부자’로 바꿔서 새로 써보는 활동도 했다”고 말했다. 함께 만든 예상문제는 국어선생님에게 보여주면서 문제점이 없는지 검토받고, 모르는 내용을 질문했다. 노용규군은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국어 성적이 40등 정도 올랐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친구에게 배우고, 친구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동기부여가 됐다”고 밝혔다.
송곡여자고등학교 2학년 김혜인·김혜원·김바른 학생은 지난해 5월부터 친구·1학년 후배들과 함께 독서토론 모임을 하고 있다. 이들은 책을 읽고 각자 독후감을 쓴 다음 돌려보면서 서로에게 코멘트를 달아주고, 책에서 사회 이슈와 관련된 주제를 뽑아 토론한다. 한 주는 원탁 토론, 한 주는 3:3 토론을 진행한다. 김바른양은 “독후감을 쓰고 토론을 두 번 하려면, 한 권의 책에 대해 3주 이상 생각을 거듭해야 한다. 읽은 책과 토론 주제에 대해 그만큼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된다”고 설명했다.
토론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은 토론을 지켜보면서 참관기를 쓰고, 참관기를 바탕으로 토론에 대한 피드백 시간도 갖는다. 김혜원양은 “친구들에게 토론방법을 배우고 잘못된 점을 고치면서 내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녀는 또 “소설 ‘1984’를 읽고서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연결되는 점을 생각하고, ‘CCTV로 감시받는 현대사회’라는 주제로 논술문 같은 독후감을 쓰는 식으로 책 읽는 방식도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토론을 준비하며 논문·신문기사 등 다양한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도 길렀다. 김혜인양은 “전에는 인터넷 기사를 보면, 밑에 달린 댓글을 보고 그대로 믿거나 똑같이 생각했지만, 요즘에는 어떤 사건을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나만의 생각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대화가 잡담으로 흐르지 않도록 균형 잡아야
스터디그룹은 모둠원 전체가 제 역할을 다해야 빛을 발한다. 조은영양은 “모둠원 모두가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고 협력해야 한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스터디그룹이 부담이 되지 않도록, 적당한 양의 과제와 공부 분량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숭문고 백남수군은 “예습과 과제를 하는 것만큼이나 복습도 중요하다. 아무리 스터디그룹에서 공부해도 공부 내용을 복습하면서 완전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스터디그룹은 친한 친구들이 모이는 만큼, 대화가 잡담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최단비양은 “지나치게 사적인 이야기로 흘러갈 때는 쉬는 시간을 가졌다가, 10분 뒤에 다시 집중해서 공부를 시작한다”고 전했다. 최나경양은 “스터디그룹이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장소문제, 의견 충돌, 교재 선정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지만, 학교 선생님의 조언이나 도움을 받으면서 그룹을 잘 다듬는다면, 혼자 공부하거나 학원에 다니는 것보다 몇 배나 큰 공부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