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30일 잠실구장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진 김동재 KIA 코치를 돕기 위한 자선경기가 열렸다. 일구회 올스타와 천하무적 야구단의 친선경기. 승부는 마지막 7회말 무사 만루에서 갈렸다. 타석에는 왕년의 해결사로 명성을 떨쳤던 한화 한대화 감독. 기대대로 한 감독은 끝내기 안타를 작렬시키며 일구회의 8-7 승리를 이끌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한 번 해결사는 영원한 해결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보인 순간이었다.

한대화 감독은 현역 시절 최고의 클러치 히터로 명성을 떨쳤다. 1982년 서울에서 벌어졌던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승부를 결정지은 8회 스리런 홈런을 바로 한 감독이 작렬시켰다. 해태로 트레이드된 첫 해였던 1986년에는 무려 16개의 결승 타점으로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유독 결정적인 순간 한 방을 터뜨리며 기록 이상의 임팩트를 떨쳤다. 골든글러브 최다 8회 수상도 바로 '해결사 본능' 덕분이었다.

최고의 클러치 히터였던 한 감독은 "승부처에서 유독 강한 타자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세이브메트리션들은 클러치 히터의 존재를 부정한다. 평균의 기록으로 냈을 때 크게 다른 게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세이브메트리션의 대부로 칭하는 빌 제임스도 종전의 입장과 바꿔 클러치 히터의 존재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클러치 히터는 누구일까.

클러치 히터를 가늠하는 기준으로는 득점권 타율과 결승타가 있다. 득점권 타율은 주자가 2루 이상 득점권 상황에 있을 때 성립된다. 그러나 1점차든, 10점차든 그대로 적용되는 약점이 있다. 그걸 보완하는 게 결승타다. 결승타 역시 1회 땅볼로 얻은 점수가 경기 끝날 때까지 리드점수로 유지되면 결승타가 되는 약점이 있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결승타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득점권 타율과 결승타를 중심으로 클러치히터를 찾아봤다.

지난해 프로야구 최고의 클러치 히터는 롯데 홍성흔이었다. 득점권 타율이 무려 4할3푼8리였고 결승타도 14개에 달했다. 모두 리그 최고이고 최다였다. 특히 끝내기가 2번이나 있었고 9회 이후 연장 포함 결승타가 4차례나 됐다. 게다가 통상 득점권 타율은 매년 오름세와 내림세가 심해 믿을게 되지 못한다고 하는데 2009년에도 홍성흔의 득점권 타율은 3할5푼2리로 전체 7위였다. 2008년 3할9리(13위), 2007년 3할3푼3리(규정타석 미달) ,2006년 3할1푼4리(6위), 2005년 2할9푼(7위)로 꾸준히 높은 득점권 타율을 유지했다. 결승타도 2008~2009년 8개. 스타 기질이 강한 선수답게 승부처에 강했다.

'7관왕 타자' 이대호(롯데)도 지난해 4할2푼6리의 득점권 타율에 결승타 10개를 때려냈다. 이대호도 2006년 3할8푼9리, 2007년 3할6푼4리, 2008년 3할6리, 2009년 2할9푼9리로 꾸준히 높은 득점권 타율을 마크했는데 매년 자신의 시즌 타율보다 높은 득점권 타율을 기록했다. 공격형 포수 강민호(롯데)도 2006년 3할8리, 2007년 3할4푼3리, 2008년 2할8푼5리, 2009년 2할9푼8리, 2010년 3할6푼6리로 이렇다 할 굴곡없이 높은 득점권 타율을 유지했다.

중심타자는 아니지만 이종욱(두산)도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2006년 2할9푼2리, 2007년 3할8푼5리, 2008년 2할3푼9리, 2009년 3할1푼9리, 2010년 3할5푼9리로 2008년을 빼면 거의 매년 찬스에 강한 타자로 위력을 떨쳤다. 정근우(SK)도 2006년 2할8푼9리, 2007년 3할2푼3리, 2008년 3할, 2009년 3할2푼8리, 2010년 3할5푼9리로 꾸준히 3할 안팎의 득점권 고타율을 마크했다. 유격수 손시헌(두산)은 2년간 시즌 타율은 2할8푼이었지만 득점권 타율은 무려 3할3푼으로 유독 찬스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결승타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최근 3년을 통틀어 김동주(두산)가 가장 많은 34개를 때려냈다. 그러나 2008년 3할4푼6리, 2009년 3할6푼9리에 달했던 김동주의 득점권 타율은 2010년 2할1푼9리로 뚝 떨어졌다. 2008년 16개, 2009년 11개였던 결승타도 2010년에는 7개로 줄었다. 기록을 갖고 클러치 히터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새삼 나타나는 대목이다. 그래서 클러치 히터는 기록이 아니라 이미지의 각인 효과가 더 크다. 홍성흔이 최고의 클러치 히터라 불리는 것도 결국 기록이 아니라 이미지가 남긴 잔상이다.

한대화 감독은 "찬스에 강한 타자들은 그만큼 집중력이 좋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는 찬스가 되면 많이 떨렸는데 그런 상황을 많이 겪다 보니 적응이 됐다"며 "결국 경험이다. 경험이 많이 쌓이면 대처 능력도 좋아진다. 그러나 그걸 극복하지 못하는 선수도 있다. 선수 개개인이 갖고 있는 특성이 모두 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한화 최진행은 새로운 클러치 히터라 할 만하다. 지난해 최진행의 시즌 타율은 2할6푼1리였지만, 득점권 타율은 3할1리였으며 결승타가 9개였다. 그 중 결승홈런이 무려 7개나 됐다.

최진행은 "시즌 초반 부진할 때만 하더라도 찬스가 걸리면 오히려 많이 부담되고 위축됐었다. 하지만 성적이 나기 시작한 초중반부터 자신감이 붙었다. 찬스에서 땅볼이나 삼진보다, 안타나 홈런 같은 긍정적인 생각들을 많이 했다. '여기서 잘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좋은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서 부담도 훨씬 줄었다"며 "클러치 히터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아직은 많이 어설프다고 생각한다. 그저 운이 조금 좋았을 뿐이다. 앞으로 더 발전하고 성적을 내면 그때가서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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