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배 원장

서울에 '연고'를 둔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생각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피 끓는 가슴을 지닌 뜨거운 청춘들은 속칭 '인 서울(IN SEOUL,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면 크게 낙심하고 만다. 이렇게 대학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사회 현상은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무색하게 만든다.

역사와 전통, 자본 등이 무엇보다 필요한 '무한경쟁 대학사회'에 당당히 발을 들여놓은 이가 있어 눈길을 끈다. 게다가 그가 내 놓은 것은 이름도 생소한 '발해대학교'다.

"앞으로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이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될 것으로 봅니다. 우리나라에 발해국제대학교를 설립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중국어를 제대로 구사하며 중국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학생들을 중국발해대 본과에 많이 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국립발해종합대학교 한국교류처를 책임지고 있는 노정배 원장(56)이 밝힌 포부다. 노 원장은 "중국어가 뒷받침돼 중국발해대 사범대학을 졸업하면 최고의 중국전문가가 될 수 있다"며 "중국이 진행하는 동북공정 같은 역사왜곡을 막으려면 반드시 중국어를 장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발해대 한국교류처는 지난해 5월 1일 문을 연 뒤, 지난 1월 28일 1년 과정의 정규수업을 끝마쳤다. 이제 1기생들을 중국발해대 본과에 입학시키며 막 '백년지대계'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지난 1월말, 구제역 파동과 함께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발해대 한국교류처에서 노정배 원장을 만났다. 다음은 노 원장과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중국대학 이름치고는 발해대라는 이름이 특이합니다.

“발해대는 1950년 금주사범대학으로 시작했는데 2003년 부여사범대학, 안산사범대학, 요녕상업대학 등과 통합되며 국립발해종합대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발해대가 위치한 요녕성 금주시는 과거 요서성의 행정수도로서 실제 '발해(渤海)'의 영토였어요. 발해가 지배하던 '동북3성(요녕ㆍ길림ㆍ흑룡강성)'의 중심부에 자리한 이유로 '발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중국이 바라보는 '발해'와 우리가 아는 '발해'가 일치하는 건가요.

“중국이 진행하는 '동북공정'을 보면 그들의 속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중국발해대를 통해서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표준어는 '베이징음'을 바탕으로 '동북3성'의 시민들이 쓰는 언어인데, 발해대 어문계열은 중국 내 2000여 대학 중 100위권 안에 들며, 특히 동북3성의 중국어 표준어 연구중심이 발해대에 설치돼 있어요. 그래서 발해대에서 중국어로 공부하며 학위를 받는다는 건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동북공정 같은 역사왜곡을 막으려면 반드시 중국어를 장악해야 하는데, 제가 직접 학위를 따 본 경험에 비춰보면 중국어를 공부하는데 발해대만한 대학은 없다고 자부합니다. 중국어는 국내대학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중국인들과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졸업생들은 잘 알고 있어요. 베이징, 상하이 등에 있는 명문대학에 입학해도 거의가 졸업을 하지 못하고 수료만 하고 있는 실정이고요.”

'동북공정'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로 중국이 자신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그들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를 말한다. 특히, 동북3성에서 이뤄진 고구려와 발해 등 우리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어 남북한이 통일됐을 때 우리와 중국 간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영토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있다.

노 원장은 '발해'의 역사와 '동북공정'의 역사왜곡 등을 함께 거론하자, 중국발해대의 지침을 받아야하는 입장이어서인지 다소 부담스러운 눈치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중국어 공부와 학문 연구로 이러한 논란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해대 한국교류처에 중국발해대는 중국인 현직 교수들이 국내에 1년씩 파견되는데, 이들은 1년 동안 학생들과 공부한 뒤 함께 중국으로 귀국합니다. 중국발해대 본교 현직 교수들이 국내에서 학생들을 책임 지도한 후, 100% 전원 본교 중국인본과에 유학 입학시키는 것이죠."

-발해대 한국교류처는 어떻게 운영되나요.

"중국에는 중국인 학생들이 공부하는 '중국인본과'와 외국인 학생들만 모여서 공부하는 '대외본과'가 있어요. 발해대 한국교류처 학생들은 중국발해대 '중국인본과'에 유학하는 것이 가능해요. 그래서 중국인본과에서 중국인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기초부터 고급 단계까지 중국어 수업을 합니다.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쓸 수 없는 학생이라도 1년 교육과정이면 중국어 능력 HSK6급(구HSK 6급~10급) 정도를 갖출 수 있어요."

'HSK(HanyuShuipingKaoshi)'는 '한어수평고시'로, 영어권의 토익이나 토플과 마찬가지로 외국인이 중국 내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 평가기준으로 활용하는 국제 중국어능력 표준화 국가고시를 말한다. 1급부터 6급까지 있으며 6급이 가장 높은 수준.

-중국발해대 한국교류처를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오랫동안 공직 생활을 하던 중 파주시 교환공무원으로 중국어를 공부하게 됐어요. 영어와 독일어는 조금 할 줄 알았는데, 중국어는 처음이었어요. 지난 2006년 휴직계를 내고 중국발해대에 입학해 2009년까지 학업을 마쳤는데, 유학생활을 하면서 보니까 한국 유학생들이 대부분 졸업을 하지 못하는 거예요. 충격을 받았죠. 그래서 늦은 나이에 유학한 것은 복받은 거라고 생각하며 그 복을 조금이나마 사회에 환원한다는 결심 하에 한국교류처를 세웠어요."

-입학과정과 지원학과 등은 어떻게 되나요.

“현재 한국교류처 학생 100% 전원이 중국인본과에 입학해 2010학번을 받았어요. 지원학과는 14계열 63학과 전공으로 경제ㆍ법학, 교육ㆍ체육, 문학, 외국어학, 정치ㆍ역사, 공학, 정보과학ㆍ기술학, 예술ㆍ신문방송학, 마르크스주의학 등으로 다양합니다. 본인이 원할 경우에는 독일의 노스하우젠(Nordhausen)국립대학과 호주의 남오스레일리아국립대학에서 복수학위취득도 가능합니다."

한편 중국발해대의 학비는 문과계열이 우리 돈으로 1년간 240만원, 이과계열이 270만원 정도가 든다. 기숙사비는 월 16만원에서 20만원 정도, 생활비는 월 25만원 수준으로 1년간 총 유학비용은 800만원 남짓이다.

-한국교류처를 운영하는 재원은 어떻게 조달하나요.

"중국인 교수들은 중국발해대에서 급여가 나와요. 한국교류처에서는 약간의 생활비 정도만 지급하고 있어요. 건물 운영비와 직원들 급여는 거의 대부분 제 개인 재산으로 충당했는데, 부인 등 집안의 눈치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이제 시작이지만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앞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될 나라들을 공부할 수 있는 국제발해대학교를 설립할 때까지 힘들어도 끌고 갈 생각입니다."

노정배 원장의 말에 따르면, 중국학생들이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발해대를 동북3성 최고 대학으로 꼽으며 입학을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백년지대계의 첫발을 내딛은 노 원장의 발걸음은 무거워만 보인다. 과연, 노 원장은 광활한 만주벌판을 내달리며 펼쳤던 발해의 기상을 경기도 파주시에서 다시 재현할 수 있을까. 문의: 발해대 한국교류처(http://www.bhukorea.kr, 031-941-8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