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초등학생 1명이 한 학기에 읽은 책(만화·잡지 제외)은 평균 29.5권이었다. 일년으로 치면 약 60권에 육박한다. 그러나 성인 10명 중 3.5명은 지난 한 해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이 수치는 8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초등학생과 성인 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0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결과다.
초등생 독서량은 2009년 27.6권보다 평균 2권가량 증가한 수치로 조사가 시작된 1994년 이래 가장 높게 나왔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의 평균 독서량은 2007년 22.4권 이후 해마다 꾸준히 증가해 왔다. 반면 성인 연평균 독서량은 2007년 12.1권 이래 2008년 11.9권, 2009권 10.9권, 2010년 10.8권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그렇다면 초등학생의 독서량이 늘어난 원인은 무엇일까. 대입 논술의 영향으로 독서도 국·영·수처럼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진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둔 주부 김지영(39·서울 서초구 잠원동)씨는 "요즘 초등학생 학부모들은 교과서에 실린 글의 원문을 아이들에게 학습 차원에서 읽히려고 한다"면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독서클럽이나 논술교육이 유행하면서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책 한 권 이상은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들이 학년이 바뀔 때마다 학생들에게 권장도서 목록을 정해주는 등 독서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원인이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어린이도서관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의 김소희(44) 관장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독서노트를 쓰게 하면서 책을 읽은 권수에 따라 상을 주곤 하기 때문에 2년 전 인근 초등학교를 조사했을 때는 한 학기에 100권 넘게 읽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통계 수치가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의 '독서력(讀書力)' 향상과 곧바로 연결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수치는 높아졌지만 내실(內實)은 보장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30여년간 교편생활을 한 이정균(52) 고양 화정초등학교 교사는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이 '데미안'이나 '삼국지'를 서너 번씩 읽었다고 자랑스레 말하고 다니지만 아이들이 실제로 책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어린이책 운동가 조월례(57)씨는 "요즘 출판되는 어린이책들이 흥미 위주의 가벼운 책들 일색이라 순식간에 읽어서 독서량을 채우는 것은 쉽지만 질(質)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월례씨는 "한 권을 읽더라도 의미를 곱씹으며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독서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주부 김지영씨도 "유령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공포물이나 그리스·로마 신화를 만화나 가벼운 터치로 각색한 시리즈물이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읽힌다"면서 "이런 책들을 섭렵한 후 아이가 독서량이 많다고 착각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입력 2011.02.09.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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