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A초등학교 B교감에게는 요즘 고민거리가 생겼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사실상 초등학교에서 시험 폐지를 선언하자, 학부모들이 "시험이 없어지면 애들이 공부를 안 한다"고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곽 교육감은 지난달 말 "서울 초등학교에서 중간·기말 고사를 없애고, 수시 평가체제로 가겠다"고 발표했다.

B교감은 "윗선(교육청)에서는 시험을 치지 말라고 하고, 학부모들은 '시험이 없으면 애들 학력 평가는 어떻게 할 셈이냐'고 항의하고 있으니 대체 누구 말을 따라야 하는 거냐"고 하소연했다.

◆교원 60% 이상 시험 폐지 반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 8~10일 사흘 동안 교원 44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육청이 중간·기말고사를 폐지하고 수시 평가로 가는 방침에 대해 응답자의 62.2%가 '반대' 또는 '적극 반대' 의사를 밝혔다. 찬성(적극 찬성 및 찬성) 응답자는 24.0%였다. 〈그래픽 참조〉

시험이 없어질 경우,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많았다. 교총 설문조사에선 74.2%의 응답자가 '중간·기말고사 폐지가 학생들 학력 저하와 학교별 격차를 가져올 것'이라고 대답했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김영미(39) 주부는 "평가도 하지 않고 어떻게 아이들 실력을 측정하느냐"며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그때그때 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게 학교의 중요한 역할인데, 그걸 하지 않으면 다들 점점 더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올해 큰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최지영(34) 주부는 "시험이 없어지면 당장은 아이들이 부담을 덜겠지만, 그렇다고 입시를 전면 폐지하는 것도 아닌데 상급 학교에 진학해서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술·논술형 시험 의무화에 대한 반발도

한편 서울시 일선 학교는 교내 시험에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 논술·서술형 문항을 출제하라는 서울시교육청 지침에 대해서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학생들의 창의성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초등학교 3학년 이상 고학년과 중·고등학생이 치르는 내신에 30% 이상 서술·논술형 문제를 출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올해는 출제 비율이 40%, 2012년까지는 50% 이상을 논술·서술형으로 출제해야 한다.

관악구 C고등학교 영어교사는 "대입에서 내신 비중은 높아졌는데, 서술식 답안 채점 인력도 부족하고 학부모나 학생들이 정답을 놓고 이의를 제기할 경우도 늘어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교총 설문조사에서 '교육청의 서술형·논술형 평가 확대 방침이 사설 학원에 대비반 등장 등 사교육 증가 원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약 86.8%가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응답했다.

교총 김동석 대변인은 "학생을 평가하는 것은 학교의 권한인데 그걸 교육청이 '시험 문제는 어떻게 내라', '초등학교는 정기적인 시험을 보지 마라'고 규제하는 것은 학교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고 학교 현장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