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吳世榮, 1942년생) 시인은 오늘도 나침반 하나만 들여다보면서 먼 바다를 항해 중이다. 그의 '테이블은 고독한/ 밤바다,/ 원고지는 그 바다에 뜬 목선(木船)'('시작(詩作)')이다.

1968년 등단 이후 40여 년 넘게 물살이 거센 한국시단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그는 물질주의에 둘러싸인 현실의 폭력성을 여러 가지 목소리로 전달해 왔다. 알레고리를 통해 자신이 몸담은 시대의 부조리함을 폭로하거나,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드러내는 등 현실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서정적으로 노래해 왔다.

"나이가 들면서 나의 삶이 나의 삶만이 아니라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그가 올 11월에 받은 한국예술상 수상소감의 첫 마디다. 이 세상에서 홀로 된 것도 없고, 또 홀로 살 수도 없다는 깨달음, 모두가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이루어진 것들이었음을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알게 되었다면서 자신이 우매함을 탓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얼굴이 보이고, 무엇인가를 시로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시인.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만들어 준 이 세상 모든 것들에 고마움을 전한다.

그는 전남 영광 묘량면 삼효리에서 무녀독남 유복자로 태어나, 백일이 지난 뒤부터 장성 필암서원 근처에 있는 외가에서 자랐다. 광주와 전주 등지를 옮겨 다니며 청소년기를 보낸 그의 선비적 동경은 외가에서, 예술적 동경은 고독했던 환경에서 길러진 것이라고 한다. 학교를 자주 옮긴 데다 내성적이어서 별다른 추억 하나 만들지 못했지만, 대신 홀로 있기를 좋아해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는 전교 백일장에서 장원하며 문학적 재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집안이 몰락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잠시 방랑을 했던 그는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진학을 꿈꾼다. 독학하여 서울대 국문과에 합격하고, 모교 은사들의 성금으로 등록했다고 한다. 그는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를 때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바닷가에서2')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사는 일이 슬프고 외로울 때면 수평선 멀리 있는 섬을 본다.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슬픔을 다스릴 줄 알기에 그 오랜 항해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견디며 시를 쓴 것이 아니겠는가.

위의 시 '그릇'에서 깨진 그릇은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으로, 중용이 사라진 상태를 암시한다. 그릇이 깨져서 '칼날'이 된 상태는 왜곡되고 경직된 사상을 강요한다. 조화와 질서를 상실한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는 날카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획일화되고 편향된 사고를 의미하는 '이성'의 눈을 뜨게 한다.

'맹목의 사랑' 역시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지금 나는 맨발'이며,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존재라는 고백을 통해 화자가 구속당하고 억압당하는, 수동적인 존재임을 보여준다. 1974년 유신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그가 겪어야 했던 사실들은 민주주의라는 절제와 균형의 힘이 상실된 깨진 그릇이 되어 그에게 상처를 주었던 일이다. 이 시는 절제와 균형의 힘을 잃은, 민주주의라는 깨진 그릇이 칼날이 됨으로써 '맨발'로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 되어야만 했던 체험적 고백이다.

오 시인의 시는 이렇게 존재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오늘도 '등대처럼 깜빡이는 스텐드의/ 불빛 아래서/ 먼 해조음(海潮音)을'('시작') 들으며 시를 쓸 것이다.'한 생을 진흙탕에서 뒹굴며/ 안으로, 안으로 삼켜야 하는 그 붉은 눈물('시인2')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