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모임에서 변리사나 기술고시, 사법고시 붙은 3~4년 후배들이 돈 많이 버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부럽습니다. 학부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 쪽으로 빠진 친구들은 아직 정식 의사는 아니지만, 나중에 수입이 많을 테고…."

올 2월 서울대 전기공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 한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는 A(32)씨는 교수 꿈을 접고 대기업 전자회사에 취직하기로 했다. A씨는 "입사해도 초봉이 7000만~8000만원인 변리사에 비하면 1000만~2000만원 적다"며 "내 스펙으로는 교수가 되긴 부족하다. 지방의 이름 없는 대학은 모를까"라고 말했다.

우리 공학·산업계 최고급 인력을 배출해 온 서울대 공대가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3년째 대규모 미달사태〈본지 27일자 A1면 참조〉를 빚은 데는 이유가 있다. 공대 학부·대학원생들은 "공학도로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석·박사학위를 받아도 밖으로는 해외 박사들에 밀리고, 안에서는 교수의 잡무까지 처리해야 하는 게 서울대 공대 대학원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현재 서울대 공대 교수 310명 가운데 서울대 공대 대학원 출신 교수는 11.2%인 35명밖에 안 된다. 서울대 공대 교수가 될 확률이 낮기 때문에 대학원 지원율도 떨어지는 것이다.

전자·조선·자동차 분야 기술개발에 힘쓰며 경제발전을 선도한 공학도 선배들의 자부심도 옛말이다. 서울대 공대 한 교수는 "소득 2만달러 시대에 다양한 직종이 생기면서 상대적으로 이공계의 프라이드(pride·자존심)가 추락했다"며 "국가의 먹을거리를 고민해야 할 공학 분야가 너무 홀대받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 대신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 B(27)씨는 "석·박사과정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공부보다 군대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서울대 재료공학부의 한 교수는 "병역특례 혜택을 위해 공대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있어 순수하게 공대 박사를 하겠다는 학생들만 계산하면 경쟁률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공대 교수들은 지원자 감소가 실험실 학생들의 수준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 교수는 "실험실에서 석·박사 과정 학생과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권위적인 실험실 분위기와 행정업무까지 떠안아야 하는 현실도 공학도들이 대학원 실험실을 등지게 하는 요인이다. 서울대 공대 석사를 졸업한 김모(25)씨는 "교수는 '왕', 학생은 '종'인 실험실 문화 때문에 제대로 공부해 교수가 되고픈 친구들은 일찌감치 해외로 떠난다"며 "우리나라는 외국 대학 실험실처럼 교수와 학생이 동반자면서 협력 관계일 수 없는 전(前)근대적 구조"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공대 강태진 학장은 "한 해에 공대 박사과정 1명에 투입되는 교육비가 미국 대학의 30% 수준에 불과하다"며 "박사과정생들의 생활비와 연구비가 교수들의 외부 프로젝트 연구비에 좌우되는 상황에서 공대 박사과정에 대한 정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대 한 교수는 "공대 박사과정 지원자를 늘리기 위해 산학협력 기업이 수백 개인 중국 칭화대처럼 기업과 손잡고 공학 우수 인력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