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한 강의실. 빌 화이트(White) 교수의 '조직행동론' 수업을 듣는 70명의 학생들 손에 TV 리모콘 같은 장비가 하나씩 들려있다.
손바닥만한 이 기계의 이름은 '클리커(Clicker)'. 화이트 교수는 강의실을 둘러보지 않아도, 클리커를 통해 수업 시간에 딴 짓을 하는 학생들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수업 도중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선택형 퀴즈를 내는 것이다. 그러면 학생들은 클리커의 숫자버튼을 눌러 교수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만약 꾸벅꾸벅 졸거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다가 답변 타이밍을 놓치면 낭패를 볼 수 밖에 없다. 이 클리커를 이용한 '돌발 퀴즈'가 성적에 20%나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업 도중 질문이 있을 경우에도 손을 드는 대신 클리커의 버튼만 누르면 교수에게 곧바로 신호가 간다. 클리커를 들고 강의실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자동으로 출석 확인이 된다.
화이트 교수의 90분 수업 동안 클리커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은 15분도 채 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클리커는 노스웨스턴대 뿐만 아니라 미국 수천개 대학에 퍼져있다. 하버드대 등 미국 아이비리그를 비롯해 전국 2500여개 대학의 강의실에서 50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클리커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 대학들은 학생들이 각자 클리커를 사도록 하거나 빌려준다. 대당 가격은 30~70달러(3만4000~8만원) 수준이다.
교수들과 대부분 학생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노스웨스턴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는 자스민 모리스(Morris)양은 "클리커는 학생들이 읽고 수업에 집중하게 만든다"면서 "학생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고 했다.
학생들이 클리커로 답변한 비율은 곧바로 대형 스크린에 그래프 형식으로 뜬다. 이는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 외에 자칫 묻힐 수 있는 학생들의 소수 의견을 이끌어내는 선순환 효과도 가져온다.
화이트 교수는 "학생들은 자신 스스로 소수의견이라고 생각할 경우에는 의견을 말하기를 꺼린다"면서 "그러나 스크린을 통해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면 학생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더 낸다"고 말했다.
교수는 클리커를 통해 누가 어떤 답변을 했는지 알 수 있지만, 통계에는 익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등의 연구에서는 학생들이 휴대전화처럼 자신과 친숙한 장비를 활용해 수업에 참여할 경우 수업에 대한 이해도가 더 향상된다는 결과도 나왔다. 현재 아이패드나 블랙베리가 클리커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애플리케이션도 나온 상태다.
그러나 항상 반대파는 있는 법. 클리커가 '캠퍼스의 낭만(浪漫)'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제법 있다.
노스웨스턴대의 한 학생은 친구 4명의 '대출(대리출석)'을 위해 클리커 5대를 가지고 강의실에 들어왔다가 교수에게 적발됐다. 만약 걸리지 않았다고 해도 수업시간 내내 혼자서 클리커 5대의 버튼을 꾹꾹 누르는 일은 여간 쉽지 않았을 것이다.